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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약이야기] 동성제약 정로환,‘국민 배탈·설사약’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9.17 18:01

수정 2014.11.05 12:10



사람들은 흔히 배탈,설사,복통의 증상이 나타나면 무심결에 ‘정로환(正露丸)’을 떠올린다.

1970년대 초 관련 의약품이 없었던 시절, 갑작스럽게 배탈이 났을 때 쓰린 뱃속을 가라앉히는데 이만한 정장 지사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로환을 ‘엄마 손’에 비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로환은 살균 성분의 크레오소오트를 비롯해 황련(지사작용), 감초(진경·진통작용), 향부자(진정작용), 진피(가스제거작용) 등 각종 생약제제가 들어있어 위장 기능 촉진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약이었다.

정로환이 국내에서 생산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다.

동성제약 이선규 회장의 숨은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에서 정로환은 없었을 것이다.

정로환은 원래 일제 침략기부터 널리 알려진 배탈·설사의 명약이었다. 러·일전쟁이 한창일 무렵, 중국에 대한 완전한 지배를 노리던 일제는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만주로 일본군인들을 출정시켰다. 하지만 병사들이 며칠만에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일본 본토에서 건강한 장정들을 골라 보냈지만 사체로 돌아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죽은 병사들을 유심히 조사한 끝에 사망 원인이 만주의 물이 나빠 설사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당시 일왕은 “하루 빨리 배탈·설사를 멈추게 하는 좋은 약을 만드는 것이 보국하는 길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며 전국에 칙명을 내렸다. 당시 일본 제약사들은 앞다퉈 약을 만들어 바쳤는데 그 종류가 무려 수천가지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그 중 다이코신약에서 만든 약이 효능이 매우 우수해 이 약을 복용한 만주의 일본군사들은 더 이상 배탈,설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왕은 이후 이 약의 이름을 ‘일본이 러시아를 물리치는데 공이 큰 약이었다’고 해서 ‘칠 정(征)’과 러시아를 의미하는 일본식 표기인 ‘이슬 로(露)’의 한자를 따서 ‘정로환(征露丸)’이라 지었다.

72년 봄 우리나라 업체로는 처음 정로환을 생산하기 시작한 동성제약은 일본 정로환과 구별하기 위해 ‘征’자를 ‘바를 정(正)’로 바꾸고 ‘동성 정로환(正露丸)’이라 지었다.

동성 정로환이 생산되기까지는 일본 다이코신약의 퇴직 공장장에게 찾아가 어렵게 제제기술을 배워온 이회장의 비화가 숨겨져 있다.

이회장은 동성 정로환의 캐치프레이즈를 만들기 위해 전국 해수욕장의 공중변소를 뒤지며 설사환자 수와 설사유형,설사량 등을 조사하며 유심히 관찰했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물을 마시면 배탈을 일으키기 쉽고 배탈이 나면 설사를 하게 마련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천태만상인 설사의 유형을 조사한 이회장은 즉시 정로환의 광고 컨셉트를 배탈,설사 쪽으로 잡았다. ‘배탈,설사엔 정로환’이라는 카피가 바로 그것이다. 이 광고문구는 적중했다. 정로환은 발매 첫 해에 무려 50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화장실에서 얻은 아이디어 하나가 정로환을 ‘배탈,설사약의 대명사’로 만들고 동성의 효자상품으로 키운 셈이다. 정로환은 한때 식초에 녹여 사용하는 무좀약으로도 애용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동성제약은 이후 특유의 ‘고약한 환약 냄새’를 없애기 위해 표면에 당의를 입힌 ‘정로환 당의정’까지 출시했다.

34년이 흐른 지금에도 국민들에게 ‘지사제=동성 정로환’을 떠올리는 높은 인지도는 다름아닌 이선규 회장이 기울인 숨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shower@fnnews.com 이성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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