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유전자 비밀담은 RNA로 병 고친다

김승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0.01 15:41

수정 2014.11.05 11:34


생명과학, 특히 유전학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노벨상 후보로 꼽히는 연구자가 있다. 바로 미국 카네기 연구소의 파이어 박사와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의 멜로 박사 연구팀이다. 이들은 지난 98년 리보핵산(RNA)을 이용하여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효율적으로 억제시키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유전자로부터 단백질 합성을 인위적으로 저해할 수 있는 것은 인류에게 그동안 100% 염기서열을 밝히고도 풀리지 않은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신비를 푸는 결정적인 열쇠를 쥐어준 것과 같다.

카네기 연구소와 매사추세츠 의대의 연구결과는 지난 몇년간 유전학 분야에서 RNA 관련 연구에 불을 지피면서 RNA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유전자 발현을 간섭하는 RNA

DNA는 자신이 갖고 있는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이때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RNA다. RNA는 DNA로부터 받은 단백질 합성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하지만 DNA는 동시에 이 RNA의 단백질 합성을 저해하는 또 다른 종류의 RNA(miRNA)를 만들어낸다. RNA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간섭받아 저해된다는 의미에서 과학자들은 이 miRNA의 활동에 RNA 간섭현상(RNAi)이란 이름을 붙였다.

사실 이런 miRNA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불과 10여년에 불과하다. 지난 93년 미국 다스머스대학의 암브로스 박사 연구팀이 하등생명체인 꼬마선충의 발생 과정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을 찾아냈다. 이후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에서도 이러한 miRNA가 발견되며 수년간의 연구결과를 통해 이들의 RNA간섭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약개발의 강력한 무기 SiRNA

RNAi의 발견은 신약개발의 패러다임도 변화시켰다.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크게 단축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1년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에서도 RNAi 현상을 유도할 수 있는 SiRNA가 개발되면서 게놈 연구 및 의약품 개발 분야에 획기적 전기를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전자가 있다고 하자. 그 유전자의 염기서열만 알면 상보적인 SiRNA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세포에 집어넣고 정상세포와 비교하면 발생하는 현상의 차이를 통해 특정 유전자의 비밀을 풀 수 있다.

실제로 불과 2∼3년 전만해도 유전자 하나의 기능을 알아보기 위해 1∼3년이라는 기간과 많은 연구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RNAi 기술을 이용하여 수개월 안에 많지 않은 연구비로 유전자 기능을 쉽게 규명할 수 있게 됐다.

인제대 김연수 교수는 “게놈 프로젝트를 비롯한 생명과학 전반의 눈부신 발전은 현재의 기술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유전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유전자들의 기능과 응용가능성을 빠르게 규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RNAi 기술을 이용하면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유전자 검정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NA로 병을 고친다

RNA는 그 자체로 병을 고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8월 RNA를 이용해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기업인 SiRNA사는 노인성 실명질환인 황반변성 질환(AMD)을 치료하는 SiRNA의 일부 임상실험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황반변성은 눈 속에 혈관이 과다하게 생성돼 실명할 수 있는 질환이다.

SiRNA사는 황반변성을 일으키는 단백질 발현을 억제하는 ‘SiRNA-027’을 26명의 환자 눈에 넣은 결과 8주 후 19%에 해당하는 5명의 환자에게서 시력이 월등히 향상되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고 보고했다.

만약 이 SiRNA가 임상실험에 성공하고 시판허가를 받으면 RNA 자체가 질병을 치료하는 첫 번째 신약이 되는 것이다. 현재 폐렴에 관한 SiRNA 임상이 또 하나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RNA 자체를 치료제로 사용하는 신약개발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많은 유전병과 암 그리고 퇴행성 질환 등 현재 4000종류 이상의 질환이 유전자의 변이 또는 유전자 발현의 이상으로 발병한다고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빛내리 교수는 “SiRNA의 경우 인간이 개발하는 다른 약들과 달리 이미 몸 속에 존재하는 miRNA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신약개발 분야에서 큰 잠재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SiRNA가 유전자의 발현을 영구적으로 억제시키는 것은 아니며 발현 또한 100% 막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이 SiRNA에 여러 화학적인 방법들을 추가해 보다 효과적이고 부작용도 적은 약을 개발 중이다.

/eunwoo@fnnews.com 이은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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