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공정위의 고무줄 잣대/고은경기자

고은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0.03 16:01

수정 2014.11.05 11:30


“공정거래위원회의 논리는 한 마디로 궤변입니다. 시장 상황을 전혀 무시한 판단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공정위가 이달 들어 이랜드와 까르푸, 이마트와 월마트의 기업 결합에 대해 독과점 우려가 있는 일부 점포의 매각을 조건부로 승인한 결정을 두고 유통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유통업계는 “독과점은 제조업에 적용되는 것이지 유통업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대형 마트뿐만 아니라 슈퍼마켓,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격을 비교해 보고 구매하는데 인근에 경쟁 점포가 없다고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실제로 대형 마트 하나가 진출해 있는 지역과 대형 마트 여러 곳이 진출해 있는 지역의 제품 가격은 크게 차가 없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공정위가 이랜드와 이마트에 적용한 기준이 다르다는 데 있다.

지난달 13일 공정위는 이랜드의 경우, 지역별 시장 점유율을 적용해 매각 점포 3개를 선정하면서 매각 대상자(인수자격 업체)에 ‘전국 상위’ 빅3를 제외했다. 매각 점포도 이랜드측이 해당지역 내에서 고를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지난달 27일 발표한 이마트의 경우, 점포 매각 대상자를 ‘지역내 상위 3사가 아닌 업체’로 결정함으로써 해당 지역에 진출하지 않은 빅3에 인수 가능성을 열어줬다. 매각 점포도 이마트가 아닌 월마트 점포 4∼5곳을 팔 것을 요구했다.

이같은 결정은 이랜드로부터 ‘공정한 조건이 아니다’라는 볼멘소리를 나오게 했다.

일부에선 공정위가 보름 만에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 자체가 내부적으로도 적절한 기준을 이끌어 내지 못했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가장 아이로니컬한 것은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이마트의 시장점유율 1위를 더욱 확고하게 해준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권순문 이랜드개발 사장은 간담회에서 “앞으로 대형 인수합병(M&A)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이미 다수의 점포를 확보한 이마트의 1위만 확고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시장 독과점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을 막아야 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결정의 또다른 수혜 당사자인 기업들을 제대로 설득하려면 현실감 있고 일관성 있는 논리와 기준이 우선되어야 한다.

/scoopko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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