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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건강하게 마신다] 하이트-OB맥주 ‘70년 무드러운 맛 전쟁‘

조용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0.03 17:44

수정 2014.11.05 11:30



맥주가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세기 구한말. 1876년 개항 이후 서울과 개항지에 일본인 거주자가 유입되면서 일본 맥주들이 함께 들어온 것. 이 시기에 들어온 맥주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맥주인 ‘삿뽀로맥주’다. 그 후 1900년을 전후 해서 ‘에비스 맥주’와 ‘기린 맥주’가 들어왔다.

당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계층은 일부 부유층과 상류층에 한정되어 있었다. 1905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맥주의 소비량은 연간 1570㎘에 불과했으나 1910년을 고비로 일본 맥주 회사들이 서울에 출장소를 내면서 소비량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국내의 최초의 맥주공장은 일본이 만주와 중국대륙을 침략하면서 군수품의 하나로 맥주를 공급하기 위해 한국에 1934년에 설립한 공장. 이때 일본의 대일본맥주 주식회사가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뒤이어 기린맥주 주식회사가 소화기린맥주를 설립했다. 이것이 바로 조선맥주주식회사(하이트맥주의 전신)와 동양맥주주식회사(OB맥주의 전신)다.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맥주 소비량은 76년까지 만도 막걸리의 1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맥주시장이 크게 성장한 것은 77년 수출 100억달러 달성과 중동 건설경기 붐으로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부터였다. 1987년을 기점으로 출고량에서도 탁주를 추월함으로써 맥주는 대중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시장이 확대됐고 지난해 맥주는 전체 주류시장에서 57%(출고량기준)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동양맥주, 조선맥주의 공생시대

우리나라 맥주의 역사는 OB맥주와 하이트맥주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초반까지 두 회사는 맥주시장의 경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보다는 서로 협력하면서 시장을 독차지했다.

두 회사는 맥주시장을 일정비율로 분할하는 형태를 취했는데 대략 동양맥주가 70%를, 조선맥주가 30%를 차지했다. 동양맥주가 ‘OB’라는 브랜드파워와 유통망확보 등을 통해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면서도 경쟁상대인 조선맥주가 탈없이 견뎌나가도록 돌봐주는 형국이었다. 동양맥주의 입장에서 조선맥주는 안심할 수 있는 경쟁상대였기 때문이다. 조선맥주가 30% 정도의 시장도 차지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 동양맥주는 독점기업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또한 조선맥주가 다른 막강한 대기업에 인수되는 경우 동양맥주는 벅찬 상대와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두 회사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상태로 공존했던 것이다.

40여년간 잠잠하던 맥주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이었다. 91년 사회적으로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킨 ‘낙동강 페놀사건’이 발생한다. 국민들은 ‘OB맥주 불매운동’을 펼쳤고 그 반사이익은 조선맥주에 돌아갔다. 하지만 동양맥주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고 그 해 하반기에 들어서자 원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조선맥주로서는 반격의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었다. 게다가 그 무렵 소주시장 부동의 1위 진로가 맥주시장 진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이트의 수성이냐 OB의 반격이냐

93년 진로는 미국의 쿠어스사와 합작으로 맥주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소주시장에서 축적한 능력과 유통망 등을 배경으로 신제품 ‘카스맥주’를 내세웠다. 막대한 마케팅비용과 ‘카스맥주’의 제품력으로 맥주시장에 ‘카스’돌풍이 불었다. 가장 큰 위기를 느낀 것은 조선맥주였다. 조선맥주는 위기에 봉착했다. 직원들은 동요했고 시장에서는 조선맥주 위기설이 나돌았다. 조선맥주는 93년 5월, 회사의 운명을 걸고 ‘하이트맥주’라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하이트맥주의 등장은 우리나라 맥주시장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

93년 5월 하이트 맥주가 처음 출시될 당시 시장 구도는 동양맥주가 70%, 조선맥주가 30%였다. 하이트는 신제품 출시 3년 만인 96년에 시장점유율 43%로 동양맥주를 꺾고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하이트맥주가 내세웠던 마케팅 문구는 ‘지하150m 천연암반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물’ 마케팅이었다. 이후 하이트는 1위 자리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고 올 상반기 처음으로 60%를 돌파할 정도로 맥주시장을 주도했다.

반면 동양맥주는 하이트 돌풍에 ‘아이스’, ‘넥스’ 등으로 맞섰지만 1위 탈환에는 번번이 좌절했다. 95년 사명을 동양맥주에서 ‘OB맥주’로 바꾸고 새로이 ‘라거’를 출시했지만 뒤집기에 실패했다. 조선맥주도 98년 사명을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하이트맥주에 1위자리를 빼앗긴 OB맥주는 99년 11월 진로그룹의 부실로 경영난을 겪던 진로쿠어스를 인수, 2001년 흡수합병함으로써 맥주시장은 다시 2사 경쟁체제로 돌아갔다.
OB는 99년 카스를 인수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99년 점유율 50% 이후 2000년 47.2%, 2003년 43%에 이어 올해 상반기 39.3%까지 추락한 상태다. 1위 탈환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OB맥주는 최근 국내 최초로 저 탄수화물 맥주 ‘카스 아이스 라이트’를 출시했다.
하이트맥주가 ‘물’을 소재로 돌풍을 일으켰듯 오비맥주는 ‘다이어트’를 소재로 대추격전에 나선 것이다.

/yscho@fnnews.com 조용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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