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임에 따라 정부가 추가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5개 비상대책반을 중심으로 대북제재의 수위에 따른 시나리오별 ‘컨틴전시 플랜(비상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회는 늑장대응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한국은행은 정부와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형국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15일 “대북제재 수위를 약한 단계, 강한 단계 등으로 가상해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면서 “현재 국내금융, 국제금융, 수출, 원자재확보, 생필품 가격안정 등 5개 비상대책팀별로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시장의 혼란을 우려해 컨틴전시 플랜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유엔의 대북 제재가 취해지고 경제적인 영향이 나타나면 단계별 대응 전략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앞서 지난 11일 국회 긴급현안 질의 답변에서 “북핵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예단해 정책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미국의 강력한 경제 제재 등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대응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비상대책팀은 박병원 재경부 1차관을 총괄대책팀장으로 거액예금 인출 등 특이사항을 금융감독원에 보고토록 하는 모니터링체제를 구축, 시행에 들어갔으며 신용평가사 및 해외투자가에 국내 시장동향과 정책방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의 컨틴전시 플랜 마련은 이번 핵실험에 따른 위기상황이 장기화될 공산이 높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현 북 핵실험에 따른 위기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KIEP는 ‘북한 핵실험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대북 제재의 수위에 대한 국제적 합의 여부가 불투명해 현 상황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번 사태가 국내 투자자금의 해외유출, 환율상승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장기화될 경우 실물시장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국회는 정부가 늑장 대응하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최경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3일 재경부 국정감사에서 “이미 북한 핵실험 실시가 계속 제기돼온 상황인데도 재경부가 지난 9일 북한이 핵실험을 발표한 이후에야 비상경제대책 수립에 착수한 것은 업무태만”이라고 지적하고 “북핵 위기로 국내자금의 해외유출이 급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임태희 의원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안이 통과됨에 따라 단계별로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과 대응 시나리오에 대한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고 ‘코리아 리스크’에 대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할 때”라면서 “남북경협사업도 제2차 핵실험 등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염두에 두고 대응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발표이후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우려하면서 일관된 정책기조 유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발표이후 그간의 부정적인 태도를 바꾸고 있지만 부처내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오규 부총리는 지난 10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내년에 경기가 위축되면 경기확장의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데 이어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도 11일 “필요하다면 경기부양도 검토하겠다”며 거시경제 기조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나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금리동결 결정 이후 “경기부양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면서 “정부에서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한가지 얘기를 꺼냈을 뿐, 꼭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며 시각차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정부 정책의 급작스런 변화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으므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진전 상황에 따라 신속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hjkim@fnnews.com 김홍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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