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칼럼] 북핵에 한국은 ‘자중지란’/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0.18 18:30

수정 2014.11.05 10:39


핵실험 이후 한국은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진 상황이다. 이른바 ‘남남 갈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 이같은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정치적인 이해득실이 미묘하게 엇갈린 부분이기 때문에 갈등의 대상자들은 마치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우리에게 ‘햇볕은 신앙이다’에서부터 ‘그러면 전쟁하자는 이야기인가’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상황이 난마처럼 얽힐수록 우리는 개인적이고 정파적인 이해득실을 떠나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일수록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한국인들이 통일을 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통일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통일의 존립 근거에 대한 믿음이 상실돼 버렸다. 오로지 남북 관계는 위정자의 판단에 따라, 편의에 따라, ‘우리끼리’라는 감정에 따라, 혹은 동정심에 따라 이것저것을 주는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원래 인간관계에서 그렇지만 무상으로 무엇인가를 받는 측에서는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없는 일이다. 무상으로 무엇을 받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공짜로 받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의타심이 생겨나게 되는 것은 인간관계나 나라 사이의 관계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주더라도 ‘정말 고맙습니다’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신들이 잘 사니까 우리에게 그 정도는 갖다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제 핵무기까지 갖는 것을 눈앞에 두게 됐으니 앞으로는 어떤 요구를 할지 궁금하다. 직접 버는 것보다 위협을 통해서 자원을 얻는 것은 매력적인 방법이다. 문명화된 사회란 주고받는 관계를 정상으로 여기지만 야만과 문명이 거래를 할 때는 주고받는 정상적인 거래가 설 땅은 별로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나는 햇볕이든 어둠이든 북한을 돕는 정책들의 공과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것에 대해서 일방으로 필자의 생각을 강요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통일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다. 모 대학의 교수처럼 ‘반드시 자본주의식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정신 나간 소리도 있지만 통일에 대해선 근원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절반만큼이라도 한반도의 반쪽에 있는 사람들이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북한을 돕는 일이 정당화되려면 북한 국민 개개인의 인간적 권리를 강화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경협이든 원조든 기부든 우리의 형편 내에서 도와야 한다.

지금 정치의 전면에 서 있고 햇볕을 기치로 내건 인물들 가운데 많은 이가 군사독재에 항거했다. 이들이 그런 암담한 세월 동안 독재에 항거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일신의 영달을 위함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이 땅의 보통 사람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좀 더 자유로운 나라를 위해 헌신했을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은 없다. 북한의 체제는 군사독재하고는 좀처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기 드문 전체주의 국가다. 이런 국가를 대함에 있어서 과거와 다른 잣대를 들이밀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사사로운 개인과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질문에 근본적인 답을 찾는다면 우리가 굳이 이처럼 ‘남남 갈등’을 경험하면서 북한의 정치 상황에 휘둘릴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는 일이다.


돈에 꼬리표가 없다고들 하지만 그 많은 돈이 이런 저런 명문으로 북측에 유입됐고 이것이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그 돈이 결코 북한의 보통 사람들의 기본권리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작용됐으며 급기야는 핵무기로 현실화됐다. 그런데도 ‘햇볕은 신앙이다’는 주장을 듣는 이 땅의 양식 있는 사람들은 정말 참담한 심경이다.
옳고 그름이 이토록 흔들려서야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남북문제를 두고 얼마나 더 큰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겠는가. 자기반성과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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