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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칸딘스키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


※뉘어진 그림에서 와락 추상화를 깨닫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나는 그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그래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시인의 ‘가지 않은 길’에서>

추상화의 창시자로 통하는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는 자기 삶에 깃든 두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번은 화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고, 또 한번은 우연히 발견한 추상화의 길이다. 그는 자신의 ‘내적 필연성’에 따라 과감하게 ‘실천’함으로써 화가로서 성공한다.

■두 번의 기회로 생을 바꾼 사나이

모스크바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칸딘스키는 늦깎이 화가였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엘리트로서, 학위취득 후 교수직 제의를 받지만 사양한다. 이미 마음은 딴 데 가 있었다. 1895년 서른 살 때, 고향 모스크바에서 본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큰 감동을 받은 것이다. 많은 출품작 중에서도 거의 형태를 잃고 빛과 색채만 남은 듯한 모네의 ‘노적가리’(1891)는 칸딘스키의 영혼을 흔들었다. 그는 교수와 화가, “그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본 후, 1896년 뭔헨으로 떠난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지나간 자취가 적어서/나는 한참을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지요/내가 그 길을 걸으면 다른 길과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거꾸로 놓인 그림이 낳은 추상화

1905년에 살롱 도톤의 정식 회원이 된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1910년, 추상화의 발견이 그것이다. 그때까지 추상화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풀이 더 있고 사람이 지나간 자취가 적어서” “한참을 더 걸어야 될 길”이었다.

어느 날 저녁, 화실로 돌아온 칸딘스키는 깜짝 놀란다. 화실에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황홀한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불타는 듯한 형태와 빛깔의 향연은 강렬했다. 순간 그는 깨닫는다. 그림이 무엇을 그렸느냐와 상관없이, 형태와 색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의 그림은 자기 그림이었다. 바로 세워져 있어야 할 그림이 벽에 비스듬히 옆으로 뉘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 우연한 깨달음이 구체적인 대상이 완전히 배제된 추상화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때까지, 사실주의 회화 전통을 충실히 따르던 칸딘스키는 비로소 화법을 바꾼다. 순수한 선과 형태, 색채만으로 강렬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조형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혁명적인 시도였다.

추상화란 쉽게 말하면 구체적인 사물을 눈에 비치는 대로 그리지 않은 그림을 말한다. 즉 화가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선과 색채와 형태로 표현한 그림을 뜻한다. 언뜻 보면 무의미한 낙서 같기도 하지만, 칸딘스키는 추상화 속에 영혼을 울리는 깊은 감동이 있다고 믿었다.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는 1910년에 그린 ‘최초의 추상화’다. 이 그림에는 확인 가능한 이미지가 없다. 단지 선, 색, 형태의 조화뿐이다. 자신의 ‘내적 필연성’에 따라 자유로운 붓놀림과 수채물감의 부드러운 번짐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음악의 화음을 조율하듯이 조화를 이룬 형태와 색채가 꿈틀거린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명품으로 만들어

1911년에 색채 중심의 그룹인 ‘청기사파’를 조직하기도 한 칸딘스키는 이듬해에 자신의 예술관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출판한다. 이미 색채가 내용과 무관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놀라운 경험을 한 바 있기에,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추상의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색채는 건반이다. 눈은 망치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저것 두들겨 목적에 부합시켜 사람들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

그는 1909년부터 그림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제목을 붙였다. 먼저 ‘즉흥’ 시리즈는 의식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표현된 그림이고, ‘인상’ 시리즈는 평면적으로 녹여진 형태가 드러난 그림이다. 그리고 칸딘스키 조형예술의 핵심인 ‘구성’은 기하학적인 형태가 의식적으로 배열된 그림이다.

기회는 각별한 안목과 과감한 결단의 산물이다. 또한 기회는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결실을 맺는다. 칸딘스키처럼, 내부에 잠재된 욕구(화가)에 귀 기울이며 새로운 세계(추상화)를 개척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훗날,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artmin21@hanmail.net

■‘키워드’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다. 모든 순간이 기회다. 하지만 기회는 선택에 의해 비로소 생산적인 기회가 된다.
그런데 선택에는 선택한 바를 성취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기회도 노력의 산물이다.

■도판설명=칸딘스키,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 종이에 수채?잉크, 50×64.8㎝, 1910, 파리: 개인소장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