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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조희룡 ‘매화서옥’

박현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0.26 16:27

수정 2014.11.04 20:07



침실에 매화가 그려진 병풍을 두르고 매화로 만든 차를 마셨다. 또 매화 벼루에 매화 먹을 갈아서 매화 시를 썼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거처를 ‘매화백영루’라 이름 짓고 호를 ‘매수’라고 했다.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렸는데 특히 매화 그림이 유명하다. 누구일까. 이 광적인 매화 마니아는 바로 ‘매화에 미친 화가’ 우봉 조희룡(1789∼1859)이다.

■광적인 매화 마니아, 조희룡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우봉의 영원한 우상이었다.
그는 추사보다 겨우 세 살 연하였으나 평생 그를 스승으로 모셨다. 추사체를 쓰고 추사의 말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우봉은 추사라는 큰 나무에 가리어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추사는 제자인 우봉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난초 치기를 그림 그리듯이 하는, 그의 가슴속에는 문자향이 없다며 내쳤다. 감각적인 아름다움으로 문인화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후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냉대를 받았다. 추사는 사대부 출신이었고 우봉은 중인 출신이었다. 그럼에도 우봉은 끝까지 추사에게 스승의 예를 다했다. 1851년에는 추사의 심복으로 지목되어 신안 임자도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전적인 저술인 ‘석우망년록’과 조선시대 회화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호산외사’를 남겼다. 특히 후자는 당시 비천한 계층 출신으로 학문과 문장, 서화, 의술, 점술 등에 뛰어난 이들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이들 책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과 인물들, 우봉의 개인사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다.

우봉은 매화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매화에 대한 열렬한 애정행위는 결국 조선 후기 묵매화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매화 그림은 간결함과 절제가 미덕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전통은 우봉에 의해 무너진다. 화려하고 섬세하고 풍요로운 양식의 매화 그림이 등장한다. 꽃잎이 적었던 매화 그림을 수만 송이가 만발한 매화 그림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또 선비의 고결함을 상징하던 매화를 대자대비한 부처의 마음으로 탈바꿈시키는가 하면, ‘홍매대련’처럼 매화나무의 줄기를 마치 비상하는 용의 자태로 그림으로써 힘찬 역동성을 부여했다.

■자화상 같은 ‘매화서옥’

대표작의 하나인 ‘매화서옥(梅花書屋)’은 과감한 흑백 대비와 묵묘법이 돋보인다.

이 그림은 매화에 얽힌 고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송나라 때, 임포는 절강성 서호 부근의 고산에 서옥을 짓고 은거하며 매화를 가득 심고 학을 기르며 살았다. 일절 민가로 내려가지 않았다. 산속에서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 삼아 일생을 은거했다. 이 소재를 바탕으로 한 그림을 ‘매화서옥도’라고 한다.

깊은 산속, 흰눈이 온산에 가득한데 눈발인지 꽃잎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매화 꽃봉오리가 흐드러지게 맺혀 있다. 그 사이로 외딴집이 한 채 있다. 휘장을 걷은 둥근 창 사이로 서책이 층층이 쌓여 있고 한 선비가 책을 읽고 있다.

화면 전체가 짧고 날카로운 먹점들로 채워져 있다. 거칠고도 분방하다. 이 먹점들의 표정은 추사체를 연상케 한다. 풀풀 나는 듯한 필치가 정적이어야 할 그림에 동적인 기운을 불어 넣는다. 그 동적인 장면 속에서 한 선비가 독서 중이다. 마치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심지처럼 고요하다.

이 선비는 누구일까. 가만 보면 매화사랑이 지극하다. 창밖에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데도, 그것으로 부족한지 화병에 매화를 꽂아놓았다. 이로 보아 선비는 우봉이 틀림없다. ‘매화서옥’은 우봉의 자화상 같은 그림이다.

■‘문자향 서권기’보다 손재주 강조

우봉은 문인화에 대한 생각이 추사와 달랐다. 당시 문인화론의 대세였던 ‘문자향(문자의 향기)’과 ‘서권기(책의 기운)’에 제동을 걸며 손재주(手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글씨와 그림은 모두 손재주다. 재주가 없으면 비록 총명한 사람이 종신토록 배워도 잘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손끝에 있는 것이지 가슴에 있는 것은 아니다.”(‘석우망년록’에서)

중국 예술이론의 핵심인 ‘문자향’ ‘서권기’는 사실 추사의 화론을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추사는 손재주만 두드러진 우봉 같은 무리의 그림을 폄훼했다. 하지만 우봉은 화론의 이념보다는 기량을 중시했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했다. 또 남의 수레를 뒤따르지 않겠다는 ‘불긍거후(不肯車後)’의 정신으로 중국 문인화론을 우리 식으로 소화했다. 그림의 성패는 숙련된 손재주를 바탕으로 한다는 수예론(手藝論)을 전파하면서 ‘메이드 인 조선 문인화’의 길을 열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쳐야 미친다. 남이 도달하지 못할 경지에 가 닿으려면 나 자신부터 그 일에 미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봉이 매화에 미쳐서 매화 그림으로 우뚝 섰듯이 사랑이든 일이든 죽기를 각오하고 파고들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키포인트’

미치면 미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광기로 비칠 만큼 미친 듯이 열정을 쏟지 않고서는 결코 뛰어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조희룡, ‘매화서옥’, 종이에 담채, 106.1×45.6㎝, 조선시대,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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