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와의 만남 진정한 그림에 눈뜨다
‘멘토(Mentor)’는 풍부한 경험과 지혜로 다른 사람의 생을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말한다.
기업에서 현장 훈련을 통해 필요한 인재를 키우는 사람이 멘토다. 그들은 업무에 대한 숙달된 경험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을 1:1로 전담한다. 그러면서 업무에 필요한 실력과 잠재력을 끌어올린다. 이런 활동이 ‘멘토링’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련(1809∼1893)에게도 걸출한 멘토가 있었다. 바로 추사 김정희(1786∼1856)였다. 소치는 추사의 애정 어린 멘토링에 힘입어 화가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멘토가 달아준 성공의 날개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솜씨가 특출했다. 초기에는 해남 윤선도 고택에서 공재 윤두서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전통화풍을 익혔다. 그런 소치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서른두 살 때였다.
소치는 1839년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의 문하에 들어간다. 그는 추사의 집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는다. 추사는 중국의 미불, 황공망, 예찬, 석도 등의 화풍을 가르치고, 자기 서체도 전수한다. 이때 ‘서권기(書卷氣)’ 높은 그림을 접하고 배운다. 그가 평생 지향한 그림은 주관의 표출을 중시한 남종문인화였는데, 그 기틀도 이때 마련된다.
소치는 위대한 스승에게 남종문인화의 정신과 필법을 배운 셈이다. 추사는 최고의 멘토였다. 이들의 사제관계는 추사가 세상을 뜰 때까지 2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추사는 그에게 ‘소치(小痴)’라는 호를 지어준다. 유명화가의 호에 빗댄 것이다. 원나라 4대 화가 중의 한 명인 황공망의 호가 ‘대치(大痴)’였다. 그런 만큼 ‘소치’라는 호에는 제자의 실력에 대한 인정과 스승의 애정이 압축되어 있다.
1840년, 추사는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를 간다. 하지만 사제의 정은 끊어지지 않았다. 소치는 스승을 뵙기 위해 세 차례나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풍랑과 싸우며 바다를 건넜다. 스승과 몇 개월을 지내며 서화수업을 받았다.
추사의 멘토링은 서화수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제자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뜻 깊은 만남을 주선한다. 즉 당대의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에게 소치를 소개한 것이다. 덕분에 소치는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약용의 손자인 정학영 등과 폭넓은 교유를 가진다.
1847년, ‘가문의 영광’을 맛본다. 권돈인의 집에 머물면서, 낙선재에서 헌종을 뵌 것이다. 게다가 헌종이 사용하는 벼루에서 먹을 찍어 그 앞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영광까지 누린다. 또 헌종의 배려로 벼슬이 지충주 부사에까지 이른다. 뛰어난 서화 실력 하나로 최고의 호사를 누린 셈이다. 더욱이 그는 중인 출신이었다.
■추사가 말하기를, “나보다 낫다”
소치의 서화 솜씨에 추사는 매혹되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추사는 시서화가 일치하는 품격 있는 문인화를 꿈꾸었다. 하지만 자신은 서예와 난초 그림에만 집중한 탓에 다른 그림에는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슴 한 구석에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추사에게 중요한 것은 명백히 드러난 형상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림 속에 내재된 심오한 정신이었다. 그런 만큼 난초 그림에서도 난초의 형상을 빌어 뜻을 드러낼 뿐, 결코 난초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런데 소치는 형상미는 물론 뜻까지 풍기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통해 시에 들어가고 시를 통해 선에 들어갔다.”(우봉 조희룡) 소치가 추사의 꿈을 보란 듯이 구현한 것이다. 추사는 소치의 그림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화법이 심히 아름다워서, 압록강 동쪽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다. 나보다 낫다.”
‘선면산수도’는 소치가 쉰일곱 살에 그린 그림이다. 그가 만년을 보낸 운림산방이 소재다. 부채의 중앙에 우뚝하게 솟은 산을 배치하고, 그 앞에 집 세 채와 나무 몇 그루를 그렸다. 그리고 하늘에는 추사체로 쓴 글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우뚝한 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집은 마치 거대한 스승의 품에 안긴 제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늘을 뒤덮은 추사체는 스승의 숨결 같다. 부채의 형태를 따라 펼쳐진 이 그림은 산수화와 글씨의 조화가 돋보인다.
■신토불이 남종화풍 꽃피워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뜨자 소치는 상심한 끝에 낙향한다. 쌍계사 남쪽에 ‘운림산방’을 짓고, 스승에게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이룩해간다. 산수, 모란, 사군자, 연꽃, 괴석, 노송, 파초 등 다방면에서 능숙한 솜씨를 발휘한다.
전형적인 남종화풍을 구사한 소치는 나중에 이름까지 바꾼다. 그것도 중국 남종화의 대가인 ‘왕유’의 이름을 따서 ‘허유’라고 지었다. 그로부터 남종화의 토착화가 시작된다. 아들 허형, 손자인 허건, 허백련 등 그의 가계를 통해 남종화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키포인트’
멘토는 네비게이션이다. 원하는 길을 찾아주고, 잘못된 길을 바로 잡아주는 고성능 네비게이션이다. 풍부한 경험과 지혜로 무장한 멘토를 찾아서 도움을 받자. 아낌없는 조언과 지도로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가치를 높이자.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허련, ‘선면산수도’, 종이에 담채, 20×61㎝, 조선시대,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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