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총제 ‘무늬만’ 바꿔…기업부담 완화 숙제

출자총액제한제도 개편을 위한 정부안의 윤곽이 마침내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 및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가 협의를 벌여 마련한 정부의 출총제 개편 방안은 자산 2조원 이상의 중핵기업에 대해서만 적용하는 수준에서 출총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중핵기업 출총제 도입을 구상했던 공정위는 막판까지 순환출자 금지의 당위성을 주장했으나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출총제 개편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재경부와 산자부의 공식입장을 넘지 못해 ‘큰폭의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핵기업 출총제로 결론났지만 향후 당정협의 과정에서 최근 ‘조건없는 출총제 폐지’로 의견을 모은 여당이 이를 수용할지 불투명해 출총제를 적용하는 수준과 범위의 수정이 뒤따를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핵기업 출총제 중심의 정책조합이 대안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14일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2차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막판 협상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공정위는 신규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방안을 고수하며 재경·산자를 설득하려 들었다. 전날 열린 공정위 간부회의에서 윤동주의 ‘서시’를 읽어가며 ‘외로운 전의’를 밝혔던 권위원장의 소신대로 공정위는 “상호출자 금지의 탈법적 형태인 순환출자는 이전부터 규제가 검토됐던 것”이라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반드시 개편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경부와 산자부는 출총제보다 더 강력한 규제인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를 수용할 수 없으며 당초 출총제 등 대기업정책의 개편 취지가 기업부담 완화였음을 거듭 강조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더욱이 권부총리는 이미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그동안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순환출자 부분에 대해 기업부담을 완화하는 쪽으로 결론 내겠다”고 밝힌 바 있어 공정위의 설득이 먹혀들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문에 순환출자 금지 방안은 빼고 현행 출총제 적용기업 수를 대폭 줄이는 중핵기업 출총제를 중심으로 한 정책조합을 개편안으로 확정짓기로 부처간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핵기업 출총제가 도입되면 출총제 규제대상 기업 수는 14개 그룹, 343개 기업에서 7개 그룹, 29개 기업으로 줄어들게 된다
■출총제 대상 줄인다
김병배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출총제 개편과 관련해 관계부처가 합의해 정부 단일안을 마련했다”면서 “오늘 오후 대통령 보고를 거쳐 당정협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단일안은 출총제 적용대상을 크게 줄이고 출자한도도 현행 순자산의 25%에서 30∼40%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산자부는 관계부처 협의과정에서 출총제를 유지하더라도 자산규모를 공정위가 제시한 10조원 이상에서 더 올리고 현재 25%로 되어 있는 출자한도를 40%로 상향조정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김부위원장은 “단일안을 밝힐 순 없지만 그 안에 여러가지 대안들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안에는 재경부와 산자부의 입장이 상당부분 반영돼 자산 총액 6조원 이상 그룹 모든 계열사에 출총제를 적용하던 것에서 자산 2조원 이상 중핵기업에만 한정하고 출자한도도 순자산의 25%에서 최대 40%로 푸는 방안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내용의 출총제 개편안은 그대로 당정협의에 넘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기업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출총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진 열린우리당의 기류를 감안하면 당정협의에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문자 그대로의 출총제 개편 최종안은 당정협의 이후에나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은 13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출총제는 규제로서의 수명을 다한 만큼 조건없는 폐지가 불가피하다”고 말해 변화된 여당내 의견을 전달했다. 또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입법안을 마련했던 열린우리당 채수찬 의원도 최근 “기업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출총제를 연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출총제를 존속시키는 차원의 출총제 개편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
이같은 방안에 대해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안에 따라 새로운 출총제 규제대상으로 들어갈 7개그룹, 29개 기업이 사실상 우리나라의 투자를 이끌고 있다”면서 “사외이사제도 등 외부 견제장치가 상당히 마련돼 있는 시점에서 굳이 정부가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의영 경실련 상임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부는 지난 3년동안 시장개혁 로드맵에 의해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번 정부 합의안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안보다 크게 후퇴한 것 같아 실망을 감출 수 없다”며 정부의 재벌정책 후퇴를 강하게 비난했다.
/[email protected] 윤경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