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8일 국무회의에서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여야의 공세가 지속된다면 임기중 하야할 수 있다는 대국회 경고를 날린 셈이지만 여당은 당정분리를 공개언급해 당청 결별 위기가 고조되는 데다 야당은 국정전념을 촉구하면서 압박의 끈을 놓지 않아 정국혼미는 가중되고 있다.
■노대통령,당적 포기 가능성 열어둬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전날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임기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이런 저런 타협과 굴복이 필요하다면 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꺼냈다.노 대통령은 특히 “현재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2가지 뿐”이라면서 “당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4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고 이는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가급적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길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뒀다.
노 대통령은 또 “국회에서 표결을 거부하고 표결을 방해하는 것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이고, 부당한 횡포”라면서 “그런데 어제 대통령이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했으며 이는 굴복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대통령이 굴복했다”고 규정했다.
이날 노대통령의 발언은 여야의 대정부 공세가 지속된다면 임기중 ‘하야’할 수도 있다는 대국회 경고를 취재진이 있는 자리에서 작심한 듯이 날린 것으로 해석된다. 국회에 의해 ‘식물대통령’이 된 마당에 언제든지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암시를 던�Y다는 것이다. 특히 이날 발언은 지난 2003년 5월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는 발언때와는 주변상황이 다르다는 점때문에 국회에 막힌 국정운영 최고책임자의 고민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 꼬여가는 국정운영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비치고 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무산부터 본격화된 여야의 인사권 흔들기는 전날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문제로 극에 이른 양상이었다. 앞으로도 이재정 통일장관 내정자문제와 정연주 KBS 사장 임명강행 등 인사권을 둘러싼 국회와의 분쟁여지는 남아있다.
또 내년으로 넘어가면 사실상 입법이 불가능한 사법·국방개혁법안, 국민연금개정법안, 비정규직 관련법안 등을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에 통과시켜야 하는데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일괄 타개하기 위해 26일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를 전격 제안했지만 하룻만에 딱지를 맞았다.
결국 전 헌재소장 임명을 철회하는 ‘굴욕’을 감수했지만 한나라당의 반응은 냉랭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근태 우리당 의장은 노 대통령의 만찬회동제안 마저 거부하는 수모를 안겼다.
대통령 면담을 여러차례 신청했으나 번번이 거부당한 김 의장은 지난 25일 당·정·청 4인 회동에서 노 대통령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월 9일까지 당·정·청이 한 몸으로 갈지, 중립내각으로 갈지 결론을 내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노 대통령은 여기에 대한 답을 이날 국무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던진 것으로 해석이 유력하다.
■여당과도 관계악화,중대결단 앞당길수도
야당은 물론 노 대통령과 여당과의 관계도 이미 물건너 간 형국이다. 김 의장이 다음달 9일까지 양자택일을 요구했다면 노 대통령은 중립내각으로 결론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생개혁입법안 처리과정과 헌재소장 문제 등 핵심사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양자간의 불만은 커질대로 커졌다.더욱이 지금은 수면밑에 있지만 정계개편 논의가 정기국회 직후 다시 본격화되면 민주당과의 대통합을 추구하는 당내 ‘비노’세력과 노대통령의 결별은 어쩔 수 없는 순서로 여겨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 현실’을 이유로 전 헌재소장 인사를 철회한 뒤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타협과 굴복’을 들었다. 타협은 지금까지 대연정 제안과 이번의 여·야·정 정치협상회의 제안 등을 통해 줄곧 강조해왔지만 굴복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대연정 제안 당시 “대통령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하겠다”(8월25일 KBS 토론회), “2선후퇴나 임기단축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8월30일 열린우리당 의원 초청 만찬)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굴복을 자주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임기말 국정운영을 원활히 하고 대선국면에서 역할을 위해 큰 틀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있다.이 경우 우리당내 민주당 통합세력들과의 결별은 동남아·대양주 순방을 마치면 표면화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csky@fnnews.com 차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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