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일본)=김세영기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소나무 숲 속을 거닌다. 이따금 ‘까악∼’거리며 맴도는 까마귀 떼들은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결전이 벌어지는 걸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까마귀의 밥이 된 건 길을 잃고 헤맨 호랑이였다.
올해 열린 일본프로골프 투어 던롭피닉스토너먼트를 정리하자면 이렇다는 얘기다.
대회 운영이나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매년 4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에서 열리는 ‘꿈의 무대’ 마스터스 골프대회와 비슷해 현지에서는 ‘일본판 마스터스’로 불린다.
올해로 33회째를 맞은 이 대회가 원년부터 지금까지 열린 곳이 미야자키현 시가이아 리조트 내에 자리 잡은 피닉스CC다. 해변 바로 옆 송림 지대에 둥지를 튼 이 곳은 약 2500여개의 골프장 있는 일본 내에서도 명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도 좋은 골프장이냐 아니냐의 판단 기준 중 제일로 치는 자연과의 조화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인위적으로 지형을 깎은 곳이 거의 없는 코스는 빽빽한 해송과 처음부터 그렇게 지냈나 싶다. 잔디가 없는 곳엔 아직도 고운 모래가 있는 것을 보면 해안이 꽤 넓었음을 짐작한다. 수 백 수 천년을 거치는 동안 작은 씨앗이 모래 위에 뿌리를 내렸고 마침내 군락을 이뤘다.
골프를 하지 않고 해송림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게 이 곳이다. 페어웨이에도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거의 없어 천천히 걸으면서 즐기면 그만이다.
골프를 하다보면 여기저기서 ‘타∼악!’ 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나무에 볼이 맞은 것. 숲 속으로 볼이 들어가면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솔가리나 맨땅이어서 금방 눈에 띈다. 하지만 1∼2타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바닷가에 바로 접해 있지만 제주도처럼 거친 바람은 없다. 빽빽한 해송이 훌륭한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큐슈에서도 남쪽에 있는 덕에 겨울에도 춥지 않다. 11월의 피닉스CC 주변에는 코스모스를 비롯한 각종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피닉스CC는 최근 이웃해 있는 톰왓슨 코스와 클럽하우스를 통합했다. 짙은 갈색에 간접 조명으로 멋을 낸 클럽하우스 내부에는 역대 우승자와 주요 선수들의 기증품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건 역시 우즈의 물건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지만 우즈는 골프백과 친필 사인이 들어간 스코어 카드 등을 남겼다. ‘K.J. CHOI’라고 쓰여진 최경주(35·나이키골프)의 골프백도 볼 수 있다.
골프장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선호텔 피닉스’가 있다. 셔틀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송림 사이를 걷는 낭만이 훨씬 좋다.
리조트 단지에서 또 하나 유명한 게 우뚝 솟아 오른 쉐라톤그랜드 호텔이다. 154m의 고층으로 일대를 굽어본다. 특히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 아침은 장관이다.
일본은 소고기로 유명하다. 미야자키도 예외는 아니다. 소고기 한 점과 이 지역 소주인 ‘구로기리시마(黑霧島)’ 한 잔이면 라운드 피로가 싹 가신다.
자동차로 10∼15분 거리에는 UMK와 선밸리 골프장이 있다. 가격도 저렴하다. 울창한 수림과 작은 연못들이 아기자기한 풍경을 연출하는 선밸리에는 캐디가 없지만 카트에 위치측정시스템(GPS)이 부착되어 있어 별 무리 없이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김세영기자
■사진설명=하늘에서 바라 본 미야자키 피닉스CC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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