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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12.07 18:09

수정 2014.11.04 15:21



※길밖에서 길을 찾아 ‘蘭다운 蘭’을 보다

“애당초 달준이 주려고 그린 것이다.”

1853년 추사 김정희(1786∼1856)는 반대파의 탄핵으로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떠난다. 그곳에서 달준이라는 시동을 만난다. 그는 평민출신이다. 먹을 갈아준 탓에 ‘먹동이’라고도 불렀다.

추사가 귀양에서 돌아와 과천에 은거할 때도 달준이는 추사를 모신다.

어느 날, 추사는 난을 친다. “난초를 안 그린 지 20년만에 우연히 그린 것”이다. 달준이에게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추사는 흥분한다. 실로 우연히 그렸는데 “하늘의 본성이 드러났다”며, “이것이 바로 유마(維摩)의 불이선(不二禪)이다”라고 자화자찬한다.

이 자부심에 찬 그림이, 조선시대 문인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불이선란도’(혹은 ‘부작란도’)다.

■20년만에 그린 난다운 난그림

‘불이선란도’는 괴이하다. 표정이 추사체만큼이나 파격적이다. 무수한 인장과 추사의 ‘제발(題跋)’이 어지럽다. 싸움닭처럼 꼿꼿하게 몸을 세운 난초는 깡마른 잡풀 같다. 난초 특유의 유려한 곡선미가 없다. 바싹 마른 붓질로 그린 잎새가 직선적이고 까칠하다. 또 여백이 없다. 마치 난초를 에워싸듯이 제발이 4개나 붙어 있다. 일반적인 난초 그림에는 적당한 여백이 생명인데, 이 그림에는 강팍한 추사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 당황스럽다. 추사는 이런 감상자를 염두에 둔 듯 제발에 이렇게 적었다.

“초서와 예서의 기이한 필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알겠으며, 또한 좋아하겠는가?”

한마디로 글씨를 써 듯이 난초를 쳤다는 말이다. 사실 빠른 붓질로 잎이 구부러지고 꺾인 모습이 마치 초서체나 예서체와 흡사하다. 추사에게 그림도 글씨의 일종이었다. 그는 서예와 그림의 필법이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이 그림은 난초를 통해 그런 생각을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서화일치(書畵一致). 글씨가 쓴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듯, 이 난초도 그린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그래서 한 미술사가는 “그림의 난초와 글씨는 바로 추사 자신이요, 추사의 몸과 의식”(강관식)이라고 했다.

추사는 ‘불이선란도’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이라며,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강요한다면, 또한 비야리성에 살던 유마의 말없는 대답으로 응하겠다.” 무슨 말인가?

‘불이선’이란 <유마경> ‘불이법문품’에 나오는 이야기다. 즉 모든 보살이 선의 경지를 설명하는데, 유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모든 보살이 유마의 태도를 보고는 감탄한다. 말과 글로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진정한 법임을 깨달은 것이다.

추사가 불이선을 언급한 것은 설명보다는 마음으로 깨닫는 예술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추사가 ‘서화일치’를 넘어 ‘화선일치(畵’禪一致)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제발’로 본 추사의 조형성

관념화된 난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이선란도’는 추사의 조형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림에 순차적으로 덧붙인 제발의 꼴이 그렇다. 그림에서는 주어진 소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화면의 전체적인 안정감을 꾀하는가가 중요하다. 소재를 배치할 때 적절한 계획을 세우는 ‘경영이치’의 원리도 배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추사는 제발로 그림의 균형을 잡는다. 마치 간장을 조금씩 넣어가며 음식의 간을 맞추듯이 한다.

만약 위쪽의 제발만 있다면 어떨까? 그때는 그림이 왼쪽으로 기우뚱해진다. 자신의 걸작에 흥분한 추사가 어깨에 힘을 잔뜩 주는 바람에 균형을 잃은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오른쪽에 두 번째 제발을 넣는다. 다소 균형을 취한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세 번째로 왼쪽 하단에 제발을 넣었다. 비로소 그림이 안정감을 되찾는다. 전체적인 짜임새가 절묘하다. 그림이 팽팽해진다.

■거장의 코믹한 애드립

이 덕지덕지 붙은 제발에는 사족이 하나 있다. 바로 꽃잎 아래에 있는 구절이다. 그 사연이 흥미롭다.

‘불이선란도’의 첫 소장자는, 세 번째 발제에 적힌 대로 달준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제삼자가 개입한다. 이 그림이 걸작임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서각을 하는 소산 오규일이었다. 소산은 추사에게 이 그림을 자신에게 달라고 간청한다. 추사는 난처해졌다. 소산은 마침내 달준에게 그림을 빼앗는다. 그리고 추사에게 그림에 별개의 제발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추사는 마지못해 세 번째 제발 옆에 작은 글씨로 이렇게 썼다. “오소산(吳小山)이 이를 보고 억지로 빼앗아가는 것을 보니 우습다.” 추사의 애드립이 걸작이다. 제발에 특별한 뜻을 담기보다 당시 상황을 그대로 기록해둔 것이다. 명품에 깃든 코믹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림에는 이런 제발 외에도 추사의 낙관에다가 소장가와 감상자의 인장이 무수히 찍혀 있다.

‘불이선란도’는 일반적인 난초 그림과는 다르다. 같은 난초를 그렸지만 개성적인 스타일 면에서 돌올하다. 이 일생일대의 그림을 두고, 추사는 말한다.
“다만 이런 그림은 하나만 있으면 족하지 둘은 있을 수 없다.”

□키워드=남들이 하는 만큼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을 할 것인가. 새로운 세계는 남들도 다 하는 생각에서 열리지 않는다.
거기서 1㎜ 더 나아갈 때 비로소 열린다. 남들이 하는, 그 이상을 생각하자.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1) 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종이에 수묵, 55.0×31.1㎝, 개인소장. (위쪽 작품)
2) 추사 김정희, ‘묵난’.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