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수사학·Rhetoric)이라면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인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본 뜻은 그런 게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레토릭은 변증법·문법과 함께 3대 교양과목으로 꼽혔다.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 그것이 곧 레토릭이었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는 죄로 고발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행한 ‘변명(Apology)’이 대표적이다.
논리로 상대방 설득하는 능력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범(典範)으로 불리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는 트로이전쟁에서 죽은 아킬레우스의 유품을 놓고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가 격론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스-로마의 레토릭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종종 벤치마킹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레토릭의 전형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 게티즈버그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이때 목숨을 잃은 병사 7500명의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를 지경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이 곳에 묘지를 세우고 대통령을 초청했다. 링컨은 2분 남짓 짧게 연설한다. 단어 수는 272개에 불과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87년 전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유와 인간 평등에 바탕을 둔 새로운 나라를 이 대륙에 세웠다. 여기서 싸운 용감한 이들은 이 곳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우리가 한 말을 오래 기억하지 않겠지만 이들이 한 일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다짐하거니와 이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으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짧은 연설로 링컨은 레토릭의 대가(大家) 반열에 올랐다. 긴 말이 필요 없는 감동의 연설이었다. 핵심은 통합이었다. 당시 남군은 적이었지만 링컨은 이들을 감싸안았다.
게티즈버그 연설 이후 꼭 100년이 흐른 1963년 이번엔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 선다. 여기서 킹 목사가 토해낸 “나에겐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사자후는 이렇게 시작한다.
“100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100년이 흐른 지금도 니그로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왜 링컨·킹목사가 없나
대가끼리는 뭔가 통하는 걸까. 킹 목사 역시 통합을 강조한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그릇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유를 향한 갈증을 만족시키기 위해 증오의 쓴 잔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래놓고 ‘꿈’을 펼쳐간다.
“나에게는 언젠가 조지아의 언덕 위에서 옛날 노예의 아들과 옛날 노예 주인의 아들이 형제애로 가득찬 테이블에 같이 앉을 수 있다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언젠가 내 아이들 넷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킹 목사의 연설을 녹음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레토릭이란 이런 것이다. 논리와 품위로 듣는 이를 감동시킨다. 비속어를 동원해 상대방을 때리고 헐뜯는 연설과는 천양지차다.
올해는 선거의 해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신신당부한다. 먼저 링컨 대통령과 킹 목사의 연설을 되풀이 읽거나 들어보라. 그 때 느낀 감동과 전율을 자기 식으로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당선은 떼어논 당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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