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어느 지방대생의 죽음/곽인찬 논설위원

요 며칠새 내가 읽은 가장 충격적인 뉴스는 한 지방대생의 자살 소식이다. 다음달 졸업을 앞둔 한모씨(27)는 3층짜리 다세대주택의 옥탑방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어머니 등 가족에 따르면 한씨는 잇따른 취업 낙방에 낙담한 나머지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 나이 27세면 대학에 다니다 입대해 2년가량 군에서 ‘썩은’ 뒤 복학해 졸업을 앞둔 때다. 이제 막 세상에 첫발을 내딛기 직전에 목숨을 버린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일자리가 없어 세상과 인연을 끊는 젊은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 무서운 일은 이런 무서운 일에 무감각한 우리 사회 풍토다. 대통령은 개헌 불씨를 지피는 데 온 정신을 쏟고 있다. 집권 여당은 권력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경제 부총리는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라는 주장에 힘 없이 밀려 시장경제의 근본을 흔드는 일에 가세하고 있다.
청년실업 해결할 의지 있나
청년실업이 현안으로 등장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은 이제 유행어 축에 끼지도 못한다. 취업 과외가 성행하는 가운데 ‘생스족(族)’까지 나왔다. 같이 먹고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는 ‘생활 스터디’ 그룹을 말한다. 이렇게 하고도 취업을 못하는 많은 젊은이는 절망 속에서 사회를 탓하고 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 정부 각료 중 27세 젊은이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하는 이가 아주 없지는 않다는 점이다. 김성호 법무장관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의 각료답게 말하고 행동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재계가 ‘기업판 사학법’이라며 한사코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중대표소송제와 집행임원제, 회사기회 유용 금지 등 3대 쟁점은 크게 손질할 모양이다. 김 장관은 또 전·월세 인상률을 연 5%로 제한하자는 열린우리당의 방안이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며 극구 반대했다.
기업을 봐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기업이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려면 기업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세금으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봤자 새 발의 피다. 결국은 기업이 나서야 한다. 이게 순리다.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떠드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런 모순이 지난 4년 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왔고 그 결과는 27세 젊은이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김 장관의 소신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도 한편으론 아슬아슬하다. 코드 역주행이 과연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은 전임 천정배 장관의 작품이다. 여권의 잠룡(潛龍)으로 분류되는 천 전 장관은 대기업 경영진 등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한 엄벌을 누차 강조하는 등 기업을 주눅들게 했다. 법을 어기면 의법조치하겠다는 데 누가 탓하랴.
김성호 장관의 소신에 갈채를
문제는 개정안이 아예 처음부터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언제 사고칠지 모르니 미리 손발을 묶어두자는 게 이 법안의 기본 취지라면 과장일까. 개정안은 또 공무원들이 위세 부리기 좋은 사전 규제의 전형이다. 힘들고 광 안 나는 사후 규제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그러나 기업을 짓누르면 그 피해가 특히 젊은 구직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무슨 짓을 하든 세상은 확 달라졌다. 하이닉스 투자가 가져올 6600개의 일자리를 놓고 이천과 청주가 한판 붙었다. 정부가 안 하니까 국민이 직접 기업 모시기에 나섰다.
시장주의자 김성호 장관의 소신이 꺾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의 코드 역주행에 브레이크를 걸고 싶은 이가 있다면 청년실업을 해결할 설득력 있는 일자리 창출 방안을 먼저 제시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