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매도의견 못내는 관행 여전

주요 기업들의 지난해 4·4분기 실적이 ‘어닝쇼크’ 수준으로 발표되고 있지만 국내 증권사들은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로 낮춘 증권사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은 ‘어닝쇼크’ 기업들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과 함께 목표주가는 낮췄지만 투자의견은 가장 낮은 등급인 ‘보유’나 ‘홀딩’으로 유지함으로써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들은 실적이 예상치보다 낮게 나오거나 전망이 어두운 기업들의 투자의견을 과감하게 낮추고 있어 국내 증권사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어닝쇼크 기업도 투자의견 ‘매수’
2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기아차, 포스코,SK, LG필립스LCD, KT&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지난해 4·4분기 실적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특히 LG전자와 기아차 등은 흑자를 예상했으나 오히려 대규모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 증권사들의 전망 보고서에는 ‘매도’ 보고서가 한 곳도 없다.
4·4분기 931억원 흑자가 예상됐으나 오히려 434억원의 영업손실을 본 LG전자는 올해 디스플레이 부문의 시장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지 않아 실적도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은 목표주가를 잇따라 하향조정했지만 투자의견은 ‘매수’에서 ‘보유’정도로 낮췄졌을 뿐이다.
지난해 적자 행진을 이어간 LG필립스LCD 역시 지난해 4·4분기 151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영업환경이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투자의견을 ‘매도’로 낮춘 곳은 외국계 증권사인 리먼브러더스 밖에 없었다.
원·달러 환율 하락세로 실적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현대차와 기아차도 올해 실적 개선세가 뚜렷하지 않아 목표주가는 큰 폭으로 하향 조정됐지만 투자의견은 ‘보유’ 일색이다.
지난해 4·4분기 대폭 떨어진 실적을 내놓은 삼성SDI 역시 올해 실적 전망도 더 어려워질 것으로 국내 증권사들은 전망했지만 ‘매도’ 보고서를 낸 곳은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3사에 불과했다.
■‘매도’ 보고서 왜 안나오나
이에 따라 국내 증권사 보고서에 의존하던 개인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정작 증권사들은 보유 의견을 내고 올들어 3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올들어 국내 대기업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낸 증권사는 두 곳에 불과했다. 삼성증권 장성민 연구원이 KT에 대해, CJ투자증권 최대식 연구원이 현대오토넷에 대해 ‘매도’ 의견을 제시한 게 전부다.
이처럼 증권사들이 매도의견을 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증권사 관계자들은 증권사 현 구조가 매도의견을 내기 힘들다는 데 큰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에서 리서치센터는 수익을 내는 곳이 아니라 비용이 들어가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때문에 증권사의 영업활동에 리서치센터가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막지는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했다.
여기에 애널리스트와 업계와의 관계에도 이유가 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껄끄러운’ 애널리스트에게 정보를 주지 않거나 대형 행사에 초대를 하지 않는 등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동종 업계를 담당하는 수십명의 애널리스트 중에서 혼자만 튀어봤자 득될 게 없다”며 “‘중립’이나 ‘보유’, ‘홀딩’ 등의 투자의견은 사실상 ‘매도’에 가까운 의견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매도 보고서가 나오면 애널리스트에게 투자자들의 협박도 이어진다. 지난해 S기업에 대해 매도의견을 냈던 애널리스트는 그 종목을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들의 협박전화와 메일 때문에 출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에 따른 피해는 전적으로 개인투자자들 몫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이해에 따른 행동이나 증권사들의 관행 등도 어느 정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개인들에게는 정확한 정보로 투자수익을 줄 수 있는 직업이 애널리스트”라며 “이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결국 손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김재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