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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시립미술관장 유희영 화백②] “뾰족구두 관장님 재미있어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01 14:45

수정 2014.11.13 17:15



“어이쿠. 오랜만입니다. 하하. 미술감상교실 신청 전화가 쇄도해서 이달말부턴 곧바로 가동해야 할 것 같아요.”

전화 수화기를 타고 소리가 들렸다. 변호사 사무실에 직원들이 30여명이 넘게 있으니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을 열어달라는 주문이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김종구 전 법무부장관이라고 했다. 책상엔 뾰족하게 깍인 연필이 놓여 있고 유 관장의 반듯하게 맨 넥타이가 인상적이다.


난 향기 그윽한 서울시립미술관장실에서 만난 유희영 신임관장은 요즘 쏟아지는 인터뷰와 결재서류들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지만 즐겁다고 했다.

그는 미술관장이 되면 꼭 한번 해보려고 작정했던 ‘찾아가는 미술감상교실’을 발표한 후 호응이 높아 내심 기뻤다.

“장비를 들고 회사든 학교든 찾아가서 그림 감상 요령을 소개할 겁니다. 그림 감상을 할줄 알아야 그림 보러 오는 것 아니겠어요? 30∼40명 이상의 희망자가 있으면 신청하면 됩니다. 한 달에 2번정도 움직일 생각입니다.”

충청도 출신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정도로 말이 빠른 유 관장은 찾아가는 미술관에 대해 강의하듯 설명했다.

경기 과천 현대미술관이 작품을 들고 이동하는 미술관이라면, 시립미술관은 직장인들을 겨냥해 그림보는 법을 설명하는 강의교실이다. 책읽 듯 설명하는 그림 감상시간이 아니라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외부강사를 초청해 신나는 교실을 열 계획이다. 예산은 많지 않지만 유능하고 재미있는 강사를 초빙하기 위해 강사료를 넉넉하게 책정했다.

■시립미술관은 세계적인 수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시립미술관. 위치가 좋아 교통이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택시기사가 미술관이 어디있는지 정확히 몰라 놀랐다는 유 관장은 ‘시민속에 파고드는 미술관’을 내세웠다.

도심 요지에 자리잡아 한 해에 95만명이 미술관을 찾지만 그동안 미술관은 문턱이 높았다. 1000만 서울시민을 위해 건립된 미술관은 공무원조직처럼 개·폐관 시간이 틀에 박힌 듯 일정했다.

“주말에 미술관을 왔는데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돌아가더라고요. 알아보니 미술관이 오후 6시면 문을 닫아서 생긴 일이었어요. 그 다음날부터 주말 관람시간을 2시간 연장했죠. 밤까지 미술관이 열려 있으니 연인들이 데이트하러 미술관에 올 수도 있을 것 아닙니까.” 앞으로는 평일 관람시간도 연장할 것이라고 했다.

“요즘엔 옛날에는 볼 수도 없던 호화로운 명화 전시를 많이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관람비가 만만치 않다는 반응도 있어서 내년부터는 시립미술관의 자체 기획전 비중을 대폭 늘릴 계획입니다.” 시립미술관이 대관 기획미술관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을 의식한 듯했다.

“현재 전시중인 ‘르네 마그리트’전도 그렇고, 올해는 ‘클로드 모네’전, ‘반 고흐에서 렘브란트까지’전 등 이미 확정된 블록버스터 전시를 연달아 열 계획이지만 내년엔 국내 작가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청년작가 교류전’ 등을 실시, 시립미술관을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키우겠습니다.”

미술관시설과 기술적인 측면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유 관장은 자부했다. 철저한 냉온방 시스템은 물론, 어떤 작품이든 최적의 상태에서 유지보존관리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항온항습 등 다양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 이는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수준높은 세계적인 명화를 여러 차례 전시할 수 있었던 이유중 하나다.

남들은 “괜찮은 자리”라고 하지만 미술관장이 되었다고 이권에 개입하며 권위를 부리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관장직에 앉자마자 초대형 블록버스터 기획전시와 관련, 이곳저곳에서 전시주최권 등과 관련한 난감한 일이 생겼으나 미술관은 장소 대여만 하는 곳이라며 딱잘라 말했다고 했다.

그는 “직장은 연습장이 아니다”며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질 줄 알고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관장님은 참 재미있어요”

“처음엔 ‘공무원은 복지부동’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들어와 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오히려 굉장한 프로의식을 느꼈습니다. 이런 열정들이 서로 잘 조화만 이룰 수 있다면, 어떤 어려운 과제도 잘 헤쳐 나가리라 확신합니다. 또 상급기관인 서울시와도 적극적이고 원활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좋은 작품’ 한 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는 학예사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해외연수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직원들의 휴가땐 해외 유명미술관 탐방을 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약간 딱딱한 분위기에 젖어 있던 미술관은 유 관장이 취임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회의시간에도 가끔 엉뚱한 말씀을 하셔서 많이 웃기도 하고 참 재미있어요.” 직원들은 취임한지 보름도 채 안됐지만 유 관장과 친밀해보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나간 미술관 밖에서 10여분이 흐르자 “우리 관장님 추위 잘 타시는데…”라며 직원들이 걱정했고 유 관장은 “괜찮아. 나, 내복 입었어”라며 양복 속에 있는 내복을 보여줬다. 그는 코가 빨개진 채 ‘하하하’ 웃었다.

유 관장은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항상 즐겁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근무하는 이상 시립미술관을 ‘즐거운 직장’으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려면 ‘신뢰구축이 우선’이라며 앞으로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가질 계획이다. 대화가 부족하면 오해도 커진다. 맛있는 식당에도 자주 가고 노래방에도 가서 노래실력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18번은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과 김수철의 ‘내일’이다.

“직장인들이 퇴근하자마자 두다리 뻗고 곯아떨어진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몸으로 체험하고 있어요.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전 7시면 일어나 8시반에 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결재할 서류들을 챙겨봐야 합니다. 청소용역 계약부터 난방비 기름값까지 결재할 서류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금요일 오후 5시. 유 관장은 기획전과 관련한 미팅이 있다며 분주히 자리를 떴다. 둥글 넓적한 일반 공무원의 구두와 달리 앞코가 뾰족한 그의 구두가 미술관에서 움직이고 있다.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서울시립미술관장=서울시 3급 공무원 국장급이다. 연봉 9300만원 수준이고 관장용 관용차가 지급된다.

화가가 미술관장으로 선임된 것은 지난 2003년부터. 서양화가 하종현 관장이 1대이고 유희영 관장이 2대째다.

개방형직위 공개모집인 미술관장직에는 지난해 6명이 신청했다. 주요 업무는 시립미술관을 운영하며 관람객 중심의 상설전시 및 기획전 개최, 소장작품 보존관리, 작품 수집, 미술인구 저변 확대를 위한 홍보, 문화상품 개발 보급 등을 맡는다.
임기는 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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