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연출하기를 싫어한다’는 예술원 회원 유희영(67) 화백은 작품 앞에서 한번 웃어보라고 하자 손사래를 쳤다.
누가 그림을 웃으며 그리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물감이 덕지덕지 묻은 코르덴 작업복을 입고 있는 그는 손으로 턱을 괴고선 '박(서보) 화백스타일’이라고 했고, 모델들처럼 눈을 강하게 치켜뜨면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연신 웃음이 터졌다.
유 화백에 대해 올해 화랑개관 30주년을 맞는 선화랑 김창실 회장은 “유 화백이 29세 때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했었는데, 그림도 좋고 아주 똑똑했다”고 기억했고 10년째 전시를 함께하고 있는 모화랑 대표는 “약속시간보다 늘 10분 먼저 도착하고 또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유 화백은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주도해온 리더다. 80년대 중반 서정 추상에서 기하학적 추상으로의 변모를 거치며 줄곧 독자적인 ‘색면 추상’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유화물감 몇가지 이상의 색을 조합했는데도 유화 특유의 질척이고 텁텁한 끈적임과 진득한 기름기가 가볍게 정제되어 상쾌한 무게만 남는다.
여러번 덧칠했음에도 단 한번에 칠한 듯 매끈하고 색과 색의 경계는 칼날로 그어놓은 것처럼 예리하다.
“제 작품은 바탕을 평균 6번은 칠해야 합니다. 유화는 빨리 말라야 3일 걸려요. 6번 칠하고 나면 18일이 걸리는데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작품 그릴때 만큼은 수행하는거나 다름없지요. 칠하다가도 붓에서 털이 빠지면 건져내야 하고 그만큼의 흔적을 지우려 또 칠하고 칠합니다. 그냥 칠하는 거예요. 도닦는 심정이죠.”
짱짱한 긴장감이 넘치는 작품은 치밀한 색의 조율이다. 자유분방함 뒤에 감춰져 있는 고도의 계산에서 나온 결과다. 색의 조합 또한 서로 거스르거나 침범하지 않는다. 남을 위한 배려가 앞선다. 그러고 보니 깔끔한 유 화백과 작품은 쏙 빼닮았다.
말끝마다 웃음보를 건드리는 그의 쾌활한 성격과는 달리, 언론에 처음 공개한 서울 구기동 자택 겸 작업실은 마치 마음을 닦는 수도원 같았다.
거실 탁자에 높이가 일정하게 쌓인 책들은 주인의 성격을 잘 대변해 주었다.
마침 창밖에는 한 폭의 그림처럼 눈이 내렸다. 네모 반듯한 구조의 집은 세상살이와 섞여 있지 않은 듯했다.
평생 홀로 살아온 그에게 “그림과 결혼했느냐”고 묻자 “에이, 그건 너무 신파조다”며 슬쩍 웃어 넘겼다.
정년 퇴임 후 작품을 보관하려고 집을 구입했는데 복층구조인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는 유 화백은 “진짜 작업실은 충북 옥천에 있다며 그 작업실을 보여줘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수련이라고 생각하는데 미술관장직도 극기력을 기르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위에서는 일복이 많다고 합니다만 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전임 관장들보다 젊잖아요. 하하하.”
예술은 평화와 자유와 지혜를 전해주는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유관장.
“그림을 안 그린다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게 아닙니다. 화가는 언제 어디서나 스케치하고 구상하고 소통합니다.”
지난 1월. 그는 잠시 붓을 놓고 조직 속에 뛰어들었다. <계속>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유희영 약력=△1940년 △충남 서천 △대전고 △서울대 미술대학 △경희대 교수 △이화여대 조형에술대학 정년퇴임·명예교수 △문예진흥원 운영위원장 △갤러리 현대 뉴욕 파리 등서 개인전 9회·150여회 기획초대전 △국전 추천작가상·예술원 회장상·국전 대통령상·국전 문공부 장관상 △황조근정훈장 △예술원 회원 △(현)서울 시립미술관장
■작품설명=빨강색은 '작품 2002-H' 캔버스에 유채 300×180㎝·작품값은 호당 50만∼60만원선에 거래된다.
보라색은 '작품 2002-M'캔버스에 유채 30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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