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뮤지컬 1세대 연기자 최정원 “이제 내 인생을 담고파”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01 16:24

수정 2014.11.13 17:15



‘끼’가 넘치던 소녀는 재즈가 좋아 여고시절 고적대에서 트럼펫을 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홀로 거울 앞에서 연기 연습을 했던 뮤지컬 배우 최정원. 그 소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응시한 롯데월드의 뮤지컬 배우 오디션에 덜컥 합격, 무대에 자신의 운명을 건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브로드웨이 꿈을 키웠던 어린 소녀는 한국 뮤지컬 무대 정상 자리에 등극한다.

한국 뮤지컬 배우 1세대로 통하는 최정원(39)은 지난 10여년간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 유지해온 국내 최고 뮤지컬 스타다. 그가 없다면 지금의 한국 뮤지컬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 훗날 국내 뮤지컬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면 최정원은 분명 한국 최고 뮤지컬 스타로 첫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현재의 관객들은 최정원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고 아직 무대에 선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하다. 하지만 뮤지컬 최고 스타에 대한 질투와 오해도 있다. ‘라이선스(번안)’ 뮤지컬 배우라든지, 좋은 작품을 혼자 독점한다는 ‘악담’은 최정원을 늘 괴롭힌다.

지난달 29일 최정원이 수많은 기립박수를 받았던 서울 동숭동 신시뮤지컬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최정원과 함께 극장 객석에 앉아 그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먼저 ‘뮤지컬 배우 1세대’라는 호칭에 대해 최정원에게 물었다. “사실 저에게도 선배들은 많아요. 뮤지컬 대중화의 1세대라고 하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아마 뮤지컬에서 팬클럽을 몰고 다닌 것이 처음이라서 1세대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제가 데뷔할 때만해도 사실 뮤지컬이 뭔지 잘 몰랐던 시기였거든요.”

최정원의 팬클럽 정회원 4000여명 가운데 30∼40% 정도는 그가 데뷔할 때부터 좋아했던 열광적인 팬들이다.

“초창기 팬들이 이젠 같이 나이를 먹고 엄마가 되고, 간혹 기획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방송작가가 되기도 했죠. 저도 지금 뮤지컬 ‘렌트’에 출연중인 조승우씨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것 같아요.”

최정원은 한국 뮤지컬 배우 중 가장 많은 팬들을 지녔다. 파이낸셜뉴스가 운영중인 인터넷사이트 뮤지컬라이프(www.musicallife.co.kr)에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1월 30일자 기사 참조)에서도 최정원은 당당히 국내 최고 뮤지컬 여배우로 뽑혔다. 혹시나 최정원이 여기저기 많은 작품을 했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것일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지난 20년간 24개 작품에만 출연했어요. 아마도 제가 출연한 많은 작품들이 롱런(long run)을 해서 마치 제가 여기저기 많은 작품에 출연한 것처럼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전 다작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최정원은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경우 2년 동안 출연했다. 햇수로는 거의 4∼5년은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밖에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하드락카페’ 등 다른 작품들도 인기가 좋아서 몇년씩 롱런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정원은 라이선스 뮤지컬 배우라는 오해에 대한 아쉬움도 표명했다.

“번안 작품을 많이 한 것 같지만 사실 제가 참여한 공연의 30% 가까이는 창작뮤지컬이었어요. ‘쇼코메디’ ‘하드락카페’ ‘지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 ‘사랑은 비를 타고’ ‘비밀의 정원’ 등이 창작 뮤지컬이었죠. 이들 작품들이 롱런을 하지 못해서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최정원이 무대에 오르면 언제나 조명을 받았다. 그리고 보석 처럼 빛났다. 그렇지만 최정원은 오히려 자신만을 부각시키는 무대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요즘 배우들은 정말 노래 잘하고 춤도 잘춰요. 바로 무대에 오르자마자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간혹 배우들이 독기를 품고 혼자서만 잘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건 좋지 않는 것 같아요. 뮤지컬 무대는 혼자 꾸미는 것이 아니잖아요.”

최정원은 유독 신시뮤지컬컴퍼니와 많은 작품을 한 것에 대해선 극단 대표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신시뮤지컬컴퍼니 박명성 대표와는 지난 94년 스태프와 배우로서 만났어요. 당시 신시는 잠시 침체기였는데 제가 출연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로 다시 부각됐죠. 그 뒤에 신시와 함께 한 작품 ‘렌트’도 그랬어요. ‘렌트’ 이후로 ‘캬바레’ ‘시카고’ ‘듀엣’ ‘맘마미아’ 등 6개 작품이나 신시와 함께 했어요.”

최정원이 신시뮤지컬컴퍼니 공연에 자주 출연한 것은 박명성 대표의 적극적인 권유가 먼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신시뮤지컬과 최정원이 함께한 작품들은 대부분 성공했다.

그동안 최정원이 맡았던 주인공들은 ‘듀엣’의 말괄량이 노처녀인 소냐 역할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렌트’의 미미 역까지 다양했다.

최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맘마미아’에선 40대 주부 역까지 도전중이다. 어느 배역을 맡겨도 최정원은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통해 최고 무대를 보여 줬다. ‘무대 위 팔색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최정원은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해 관객을 매번 놀라게 했다.

최정원은 앞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투영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창작뮤지컬 ‘비밀의 정원’ 2탄도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에 무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넌지시 밝혔다.

“창작뮤지컬 섭외가 많이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창작뮤지컬이나 라이선스 뮤지컬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출연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앞으로는 제가 살았던 인생을 나이테처럼 그려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가리지 않고 출연할 거예요.”

어찌보면 최정원이 현재 출연중인 뮤지컬 ‘맘마미아’도 이같은 바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맘마미아’ 첫 공연 때는 나름대로 불안했어요. 일단 처음해보는 40대 배역인데다가 열정만으로론 힘들지 않을까도 걱정했죠. 그렇지만 아줌마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rainman@fnnews.com 김경수기자

■그리고 못다한 이야기

첫 만남에서 최정원은 활짝 핀 해바라기처럼 웃음꽃을 보여줬다. 기자는 순간 사전에 준비했던 다소 까칠한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릴 뻔해서 다소 난감했다.

인터뷰를 했던 월요일은 최정원에게 공연이 없는 날이긴 했지만, 하루에 연달아 3차례나 여러 매체와 인터뷰하는 바람에 최정원은 거의 녹초가 돼 있었다. 난방도 되지 않는 극장 객석에서 한 시간 동안 밝은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해 준 최정원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타가 된 딸

최정원의 딸 수아는 어찌보면 엄마보다 더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됐다.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통해서 태어났고 TV를 통해 그 수중분만 모습이 방영됐다. 최정원의 남편이 방송사 PD 출신이었다는 점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제 아홉살인 수아는 아직 스타가 뭔지 몰라요. 제가 뮤지컬에서 요정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수아가 나중에 ‘엄마, 날개를 어디다 숨겼어’라고 해서 당황했던 적도 있어요. 신랑 이야기가 먼저 스타가 된 부모만큼 자식이 더 잘된 경우는 못 봤다고 해요. 그래도 딸이 뮤지컬을 한다고 하면 가르쳐 줄 것이 많아서 좋을 것 같아요. 엄마로서 선배가 되는 거니까 재밌겠죠. ”

▲최경주?

최정원과 남경주를 합쳐서 혼동해 부르는 말이다. 남경주는 수많은 작품에서 최정원과 함께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간혹 남경주를 최경주라고 실수하기도 한다. 기자도 이날 인터뷰에서 남경주를 최경주라고 부르는 실수를 했다.

▲가장 조화로운 배우

최정원은 뮤지컬을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뮤지컬은 조수미처럼 노래만 잘해서도 안되고, 김혜수처럼 연기만 잘해서도 안된다. 뮤지컬의 3대 요소인 춤, 연기, 노래를 최정원만큼 조화롭게 표현해내는 배우도 드물다. 그의 춤, 연기, 노래는 마치 황금분할의 법칙이라도 적용된 듯하다.

▲브로드웨이 스승

최정원은 브로드웨이 전문가들로부터 뮤지컬 기본기를 배운 행운아였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롯데월드 뮤지컬단원 1기 모집에 응모해 합격했다.

“그때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 7명이 브로드웨이 출신 미국인 강사들이었어요. 나름대로 브로드웨이에서도 잘 나가는 트레이너들이였죠. 60만원이나 되는 월급까지 받으면서 최고의 강사들로부터 하루 12시간씩 1년여 동안 재즈, 발레, 애티튜드(태도) 등을 교육 받았어요. 그때만해도 뮤지컬 관련 교육기관이 거의 없었기에 전 행운아였다고 생각해요.”

최정원과 함께 교육을 받았던 남경주는 이후 97년에 미국 유학을 떠났는데, 자신을 처음 교육했던 미국인 강사들을 다시 만나 보컬교육을 받았다.

▲윤복희

“제 우상은 윤복희 선생님이예요. 그분 연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어찌 보면 윤복희와 최정원은 닮은 구석이 있다. 캐릭터에 깊숙이 빠져 연기하는 모습이 그렇다.

▲‘맘마미아’ 홍보차 TV 출연

최정원은 최근 ‘맘마미아’ 홍보를 위해 TV 오락프로그램인 ‘도전1000곡’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다. ‘맘마미아’의 주인공이 아줌마이기 때문에 아줌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TV프로그램에 나가서 홍보를 하면 효과가 좋을 것 같다는 게 출연 이유였다. 팬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건강

최정원은 ‘맘마미아’ 공연을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담석증로 인해 공연이 끝나면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게 지인들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최정원이라는 배우를 보고서 티켓을 구매한 관객들을 위해 그는 오늘도 무대에 서고 있다.

▲불꽃이 되고파

최정원이 전해준 명함에는 ‘배우로서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최고의 작품을 만나 내 모든 것을 펼쳐보여 내 스스로 정상에 섰다고 느낄 때 사라지고 싶다’고 적혀 있다.

▲소중한 작품

“그동안 24개의 작품에서 24명의 인생을 살았어요. 모두들 똑같은 자식 같은 배역들이예요. 특별히 어떤 작품의 배역에 더 정이 가는 것은 아니에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하면 ‘렌트’의 미미 역할이었죠. 당시에 전 아이를 낳고서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섹시한 역할을 무난히 했다는 평을 받아서 즐거웠어요.”

▲엄마는 스승

최정원을 배우로 이끄는데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어린 시절 혼자서 연기연습을 하고 노래를 부르던 최정원을 데리고 연기학원 문턱까지 데리고 간 사람도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엄마의 꿈이 배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신문사에 다니시던 할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서 못하게 하셨나 봐요. 엄마가 하지 못한 것을 저에게 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경수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