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마음을 쓸어주는 그림 “평안을 드립니다”

박현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06 18:47

수정 2014.11.13 17:03



※노정란 개인전-이화익갤러리 21일부터

※'색놀이-쓸기 #49' 190×190×5㎝·캔버스위에 아크릴·2006-2200만원

붓고 쓸고, 붓고 쓸고. 3년을 준비했다. 한없이, 수없이 쓸어냈다. 일명 ‘빗자루 작업’으로 돌아온 서양화가 노정란(58)은 이제 “화면의 평정을 찾고 내가 눕고 싶다”고 느낄 정도가 된 작품을 들고 전시장에 나타났다.

작가는 “요즘 작품이 좋다”고 말했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채색한 작품은 화려한 색채와 모더니즘 회화 특유의 단순한 형태다.
화면에는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하나 둘 셋의 색띠가 보일 뿐이다. 작가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빗질’은 일필휘지의 기운이 넘친다.

“한 방향으로 싸악 쓸면서 평정을 되찾았어요. 한때는 음과 양, 밤과 낮, 남과 여 등 극단으로 조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이제는 형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형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선입견이잖아요. 그저 물 흐르듯이 가는 겁니다.”

이미지가 없어진 작품은 색의 깊이로 세월의 흔적과 삶의 결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색놀이-쓸기’ 연작

“어느날 서울 평창동 언덕에 눈이 내렸어요. 대나무 비로 쌓인 눈을 쓸었는데 빗자루의 결, 그 속에 묻어나오는 층층의 흙과 낙엽이 보이는데 삶의 역사가 전해지더군요. 그것을 보면서 아, 색을 쓸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탄생한 빗자루 작업은 2004년 미국에서 개인전을 열 때 슬쩍 보여줬다. 반응이 좋았다. 주변에서도 이제야 색감을 찾았다고 호응했다. 누군가는 “화려한 우울 속에 숨쉬는 색채”라고도 말했다.

작가는 오는 21일부터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색놀이-쓸기’ 개인전을 연다.

색과 색이 서로 얽히면서 결을 만들어 내는 화면은 가장자리에 빗자루에 쓸려나간 잔설의 자국처럼 빗질 흔적이 선명하다.

수없이, 한없이 쓸고 또 쓸었다는 작품은 산사 처마의 풍경 소리로 울리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자신과 조우하기도 한다.

이번 작품에 대해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쭉쭉 빗자루로 밀어가다 가장자리에 와서는 마치 눈을 쓸고 빗자루를 땅바닥에 툭툭 털듯이 단절의 흔적을 남긴다”면서 “굵은 빗자루로 대범하게 밀어붙인 색띠는 그것들이 쌓여가면서 만드는 결 때문에 깊은 내면의 울림을 동반한다”고 평했다. 또한 눈을 쓸다보면 어느덧 눈을 치운다는 목적의식이 사라지고 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무위의 즐거움에 젖어들 듯이 노정란씨의 근작에서 만나는 색채는 쓸기의 행위 속에 자신을 망각하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순응된 감정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는 자국이라고 말했다.

“50이 넘어서야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여성작가로서 20년 이상을 화단에서 버티는 일만큼 힘든 일은 없어요. 그리고 또 그리고…, 이번 전시 주제가 ‘색놀이-쓸기’였다면 앞으론 ‘색놀이-농사’로 갈겁니다.”

작품은 작가의 곰삭은 흔적이자 삶의 재발견, 고단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 40∼300호 크기 작품 20여점을 선보인다.
작품 108×154㎝(80호 변형)는 1200만원, 150호 크기는 2200만원에 판매한다. 100호 크기는 1600만원이다.
3년 전에 비해 300만원이 올랐다.02)730-7817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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