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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팬텀오브더뮤지컬] 올 슉 업-노래·춤·연기, 홀딱 반했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10 11:23

수정 2014.11.13 16:56

세계적인 팝 가수의 히트곡을 버무려서 만드는 쥬크박스 뮤지컬은 100m 달리기를 50m, 적어도 30m 앞에서 달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뮤지컬에서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창작 뮤지컬은 낯선 노래로 관객을 감동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 그러나 록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만을 모아서 만든 뮤지컬이라면 어떤 까다로운 관객이라도 금세 친밀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올 슉 업(All Shook Up)’은 그룹 아바의 노래로 대성공을 거둔 ‘맘마미아’의 계보를 잇는다. 역시 신나는 뮤지컬이다.
미국에서 2005년 초연됐으나, 한국에선 이번이 첫 공연이다. 올해가 엘비스 30주기라는 의미도 있다.

‘올 슉 업’은 2시간 20분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내용 자체가 흥미진진하게 얽히고설키는 사랑으로 넘친다. A는 B를 좋아하는데 B는 C를 좋아하고 C는 다시 A를 좋아하는 식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기타를 둘러멘 멋쟁이 채드(김우형)가 외딴 마을에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마을은 시장 마틸다(최나래)가 남녀간 사랑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는 곳이다. 끝은 물론 해피 엔딩.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자기 짝을 찾는다.

‘올 슉 업’은 노래-춤-연기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이는 커튼 콜 때 관객들도 너나없이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면서 환호했던 걸 보면 알 수 있다.

노래는 출연진 중 누가 불러도 크게 불안한 구석이 없다. 작품에 따라선 특정 배우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잔뜩 긴장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올 슉 업’은 그런 고민을 덜어준다. 그렇다고 무대를 압도하는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제 역할을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

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장면이 바뀌는 동안의 짧은 공백도 앙상블이 춤으로 메운다. 특히 16살 틴에이저 로레인(난아)의 깜찍한 춤이 돋보인다. 춤이 끊이질 않으니 무대에 활력이 넘친다.

연기는 특히 데니스(정성화)가 눈길을 확 잡아끈다. 채드의 조수(助手)가 데니스의 역할이다. 데니스는 나탈리(이소은)를 사랑하는데, 나탈리는 데니스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채드에 홀딱 반한다. 정성화는 어수룩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암송하는 낭만파 시골 촌뜨기의 역할을 기가 막히게 소화했다. 커튼 콜 때 가장 큰 박수가 쏟아진 건 당연하다.

로레인은 16살 틴에이저의 발랄함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말투, 얼굴 표정, 걸음걸이, 모든 게 첫사랑에 빠진 소녀답다. 양동근과 드렁큰 타이거의 앨범을 제작할 때 피처링(Featuring)으로 참가한 노래 실력도 괜찮다.

무대장치도 참신하다. 로레인이 자전거를 타고 첫사랑 딘(양승호)이 탄 버스를 쫓아가는 장면에선 웃음보가 터진다. 자전거가 점점 멀어지자 객석에선 아쉬운 탄식과 함께 응원의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주인공 채드가 손을 대면 불이 번쩍 켜지는 소품들도 재미있다. 극 마지막, 쌍쌍의 연인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교회 장치도 근사했다. 무대장치만 잘해도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엘비스는 1950~1960대에 주로 활동했다. 이 때 엘비스 노래를 흥얼거리던 10~20대는 지금 50대 안팎의 중년이 됐으리라. 그런데 관객층을 보니 여느 뮤지컬처럼 20~30대 젊은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 ‘올 슉 업’은 전 연령층에서 통할만한 뮤지컬이다. 중년층은 향수에 젖을 수 있고, 젊은층은 반세기가 흘러도 전혀 ‘촌티’를 풍기지 않는 엘비스의 명곡을 빠른 템포로 즐길 수 있다.

좀 깊이 들어가면 ‘올 슉 업’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The Twelfth Night)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십이야가 중세에 일리리아(Illyria)라는 상상 속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라면 ‘올 슉 업’은 1950년대 미국 중서부의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다. 남장 여자 때문에 엉뚱한 해프닝이 빚어지는 것도 같다. 그(사실은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한 여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올 슉 업’을 보고 있자니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꼬마 신(神) 에로스가 떠오른다.
에로스의 화살은 어찌나 강력한지 음악의 신(神) 아폴론마저 이 화살을 맞고는 상사병에 미칠 지경이었다. '올 슉 업‘에서 홀딱 반한 이들은 마치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것처럼 “딱 한번만~”(It's Now or Never)을 소리 높여 외친다.
바로 All Shook up, 홀딱 반한 상태다.

◇ 언제=2007년 2월 2일(금) 오후 8시 공연
◇ 어디=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
◇ 출연=김우형(채드) 이소은(나탈리) 김봉환(짐) 이정화(실비아) 정성화(데니스) 백민정(산드라) 최나래(마틸다) 임병욱(보안관 얼) 양승호(딘) 난아(로레인)

/paulk@fnnews.com 곽인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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