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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10년 왕국’ 위상 뿌리째 흔들

홍준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13 09:23

수정 2014.11.13 16:44

세계 최강을 자부해온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짝퉁(위조상품) 삼성 반도체’의 국내외 유통에 충격을 받고 휘청거리고 있다.

‘짝퉁 삼성 반도체’의 적발은 지난 10년 이상 ‘반도체 왕국’으로 군림해온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위상을 뿌리째 흔드는 ‘반도체 쇼크’다. 특히 이번에 적발된 ‘짝퉁 반도체’는 해외 경쟁업체가 한국 제조기술을 빼돌려 베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관계당국에 의해 적발된 ‘짝퉁 삼성 반도체’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지난 2001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1G 낸드플래시 메모리(SAMSUNG 340 K9K16G8U0A)’ 제품이다.

그간 해외에서 휴대폰, 디지털TV, MP3플레이어 등 삼성전자의 완제품을 베낀 ‘짝퉁’은 수시로 적발됐다. 그러나 연간 수십억개씩 부품 형태로 양산·판매되는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통째로 베낀 ‘짝퉁’이 적발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관계당국을 경악케 하고 있다.


우리 수출상품 중 ‘낸드플래시’가 연간 100억달러가량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에서 제조된 ‘짝퉁 낸드플래시’는 품질 불량과 저가 덤핑판매로 인해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를 독주해온 한국 반도체산업의 신뢰성에도 먹칠을 하고 있다. 업계는 이번에 적발한 ‘1G 낸드플래시’뿐만 아니라 ‘2∼4G 낸드플래시’를 모방한 ‘짝퉁’도 국내외에서 이미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삼성전자, 짝퉁 적발에 ‘충격’

‘짝퉁 삼성 1G 낸드플래시’ 적발은 삼성전자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삼성전자는 ‘짝퉁 1G 낸드플래시’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자사 제품을 베낀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아울러 2G나 3G 낸드플래시 짝퉁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다.

삼성은 수년간 수조원을 들여 상용화한 낸드플래시가 중국산 ‘싸구려 짝퉁’의 공세로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가 지난 2001년 선보인 이래 약 180억달러(누적)의 매출을 거둬 D램 반도체와 함께 ‘삼성을 먹여살리는 반도체’로 여겨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1∼8G 낸드플래시를 주력으로 내세워 전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지난 2002년 10억달러, 2003년 20억달러, 2004년 37억달러, 2005년 57억달러, 2006년 60억달러(잠정) 등 매년 고성장을 거듭했다.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전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은 지난 2005년 107억달러, 2006년 121억달러, 2007년 141억달러, 2008년 169억달러, 2009년 213억달러, 2010년 235억달러 등으로 전망이 밝다. 이 때문에 경쟁국들이 한국기술을 빼돌려 짝퉁 반도체 제조에 나서고 있다.

■짝퉁에 무너진 ‘반도체 왕국’

‘짝퉁 삼성 반도체’ 유통으로 인한 단기적 피해는 적어도 10억달러 이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짝퉁 반도체’가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유통될 경우 매출 감소와 브랜드 타격에 따라 피해액이 100억달러 이상으로 커질 수도 있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으로 수출 3000억달러를 돌파하며 올린 무역수지(166억달러)에 근접한 수치다.

실제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전체 수출 3000억달러의 11%인 374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중 낸드플래시 비중은 37% 정도다.

낸드플래시 제품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지난 2002년부터 경쟁국들보다 발빠르게 출시해 수년째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효자품목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지난해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만 14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두 회사는 지난 2002년 이래 50% 이상의 시장을 점유하면서 ‘코리안 파워’를 떨쳐왔다.

이런 상승세에 ‘짝퉁 삼성 반도체’의 등장은 ‘달리는 화차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다.

모조품피해대책협의회 관계자는 “수조원을 들여 반도체 개발과 생산라인을 구축해도 짝퉁 제품이 유통되면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며 “단순한 판매량 감소뿐 아니라 품질이 불량한 짝퉁 반도체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 훼손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핵심기술까지 베꼈나

‘짝퉁 상품’은 단순히 외형만 베끼는 수준을 넘어 핵심기술까지 모방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관계당국은 이번 ‘짝퉁 삼성 반도체’가 단순한 ‘외형 베끼기’가 아니라 핵심기술까지도 모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내부직원과 결탁해 핵심기술 빼내기를 통한 짝퉁제조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이번 짝퉁 삼성 반도체가 중국 제조업체와 국내 무역업체간 제품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발각됐다는 점에서 단순한 외형 베끼기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기관은 이번 ‘짝퉁 반도체’ 유통과 관련한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기술 유출에 대해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1G 낸드플래시를 모조한 짝퉁 반도체가 유통된 게 사실이지만 기술까지 유출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전산업으로 번지는 짝퉁상품

‘반도체 짝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최근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 자사의 로고를 본뜬 저가의 반도체칩 모조품이 기승을 부려 대응에 나섰다.

짝퉁은 반도체뿐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짝퉁’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목인 자동차, 휴대폰, 철강 등 전분야에서 속출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초콜릿폰을 중국에 수출했다가 낭패를 봤다. 이미 중국시장에 짝퉁 초콜릿폰이 활개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최근 슬라이드폰을 중국시장에 출시하자마자 짝퉁이 등장해 곤욕을 치렀다. 삼성전자는 ‘삼송’ ‘섬싱’ ‘심성’ 등 각양각색의 짝퉁 브랜드가 판쳐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분야의 경우 쌍용자동차의 주력 모델인 ‘렉스턴’이 중국에서 짝퉁으로 만들어졌고 현대자동차의 신형 싼타페와 기아자동차의 쏘렌토도 외부와 내부가 거의 비슷한 짝퉁이 등장해 대응에 나선 바 있다.

/fncho@fnnews.com 조영신 양형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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