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변방의 춤이 주류로…‘극복의 춤’ 세 편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13 16:00

수정 2014.11.13 16:41


‘극복의 춤’ 세 편이 포이동 M극장에서 장르를 초월한 평론가들의 열광적 관심과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 속에 2월 10일(토),11일(일) 막을 내렸다. 자발적 참여와 선험적 필요성에 의해 변방의 춤이 주류로 바뀐 이번 춤은 매니아 관객들을 창출시키며, 안무가들의 춤 인식, 제작 방식의 변화, 스타일 추구로 춤 진화의 과정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윤수미 안무의 『이끼,Moos』, 김혜숙 안무의 『매혹,Temptation』, 이해준 안무의 『의식,Consciousness』은 자기 정체성을 지키며 품격을 업그레이드한 춤 철학, 세기로 연마된 몸, 촘촘히 짜여진 구성, 공간에 적합한 무브먼트, 창조적 조명, 효율적 소품 활용, 음악을 포함한 사운드의 편집과 활용의 새로운 가능성 등 가시적 성과물을 낳았다.

자기 목소리를 담고, 상상력을 극대화한 이번 극복의 춤 선집 공연은 제도와 편견이 잉태한 이 땅의 춤들에게 희망의 몸짓을 닮으라고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진부한 형식과 문제점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들은 스튜디오 춤 활성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었다.

뉴 코리안 댄스 웨이브는 현대인 고독과 소외, 서로에게 섬처럼 우뚝 선 소통단절에서 아울렛을 ?h는 방식과 방법론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상외로 강박관념과 스트레스를 풀어 헤치는 독특한 양식과 정신분석학적 스펙트럼까지를 어우르고 있었다.

주제의식과 표현양식을 잘 살린 윤수미의 『이끼』는 어둡고 아픈 현실에서 ‘희망’으로 항해하는 콜럼부스적 모험을 옷고름에 숨기듯 간결한 상징을 담아 퇴폐의 숲, 얼룩진 현실에서 극기하는 모습을 자연주의적, 신비주의적 춤사위로 역어낸다.

춤 스타일리스트 윤수미는 『이끼』에서 양발 등에 탄생 코드인 촛불을 달고 우보를 시작한다. 만물이 정지된 가운데 신비감 충만(舞瞞)한 도입은 집중을 요한다. 세월의 흐름과 시간의 경과를 뜻하는 행위는 공간 이동으로 대체되고 촛불이 꺼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숲 속의 신비를 ?h아 흥겨움에 취한다. 말을 타고 헤맨 숲 속, 그 속에서 그녀가 가벼운 놀라움과 흥분으로 꿈같이 보낸 밝은 날들은 회한과 추억으로 내려앉는다. 기억에서 반추되는 말소리, 파이프 음을 생각한다. 이끼낀 툰드라의 땅에서 그녀는 가벼운 물소리를 듣는다.

그녀의 이끼는 내공을 뜻한다. 그녀에게는 하늘이 있었고, 자신을 일깨운 숲이 있었고,자신을 성숙시킨 마법적 의식이 있었다. 초록과의 만남, 그것이 심화된 이끼를 춤으로 풀어내면서 윤수미는 숲 속의 전설을 완성시켰다. 이끼를 뿌리면서 그녀는 고수임을 입증했다.

자신이 매혹의 코드인 김혜숙은 『매혹』에서 자신을 풀어헤친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라처럼 일렁이는 자신의 열정은 천정에 메달려 있는 ‘바’이다. 견고한 ‘자신’이란 성(城)의 성주가 휴가를 감행함으로서 얻을 행복의 언로와 자신감을 조용히 탐색하고자 한다.

무대 중앙 바닥에 깔린 한 장의 흰 종이, 그 위에 새로운 자신을 그려 넣고 싶은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바라보는 세상, 자신의 주변에 서성이는 남자(이태상), 첼로 음처럼 부드러운 세상, 이성을 감지해내고 싶은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인형극 하듯 살고 싶은 것이다.

‘사각의 세상위에 원과 선의 만남, 부드러운 선율이 채워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가정은 점강의 수사로 춤을 채워 넣는다. 손에서 몸을 터치하고 발로 세상을 느끼며 일렁이는 남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인, 변화하는 ‘여인들의 오늘’은 부조리가 아니며 게임이다.

총체적 안무가 이해준은 춤 구성과 무대 연출에 해박한 식견을 갖고 있는 만능 춤꾼이다.그는 『의식』에서 상위개념의 춤철학의 실체를 간결하게 구성하고 있다. 다소 난해한 제목을 춤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면 구성과 조명의 분할화를 통해 네오탄쯔 메소드를 활용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와 타르코프스키의 영상철학을 쫓아가다보면 의식의 저편, 깨어있는 정신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일상 속에 잠재되어 있는 무수한 반란과 반동, 혁명의 기운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하고, 썩은 사회에 신선한 산소를 불어 넣는 창조적 동인이 된다.

이보경, 손영민, 김준영, 손나예는 스폿으로 박힌 원의 움직임, 사운드의 변화에 따라 총체와 개별의 특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빠른 몸동작과 일체감이 현대성을 다양하게 표출시키며 강조와 반복, 관능과 생동감을 경쟁적으로 얻어간다.

의식의 강조, 언어유희, 책에 대한 풍자가 시작되며, 책에 대한 향수가 살아난다. 책을 읽으며, 따라하고, 찢기도 한다. 춤은 문자가 되고, 문자는 춤이 된다. 책에 대한 지루함은 무극(舞劇)을 위한 사랑놀이로 변한다. 복합구성의 철학적 테제는 현대를 재빨리 훑어내는 빠른 박의 타악들이 감정을 이입시킨다.

‘우리는 춤으로 말해야 하는가? 우리의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낭만이 그 대답이 아니던가? 해답은 무엇이 되어도 좋다. 웃자!’라고 춤은 해답의 일면을 제시하고 있다.


세편의 ‘극복의 춤’들은 기댈 것 없는 실체에 대한 기다림보다는 야생의 생존법을 익히려는 몸짓이다. 관객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미학을 추구하는 작품들이다.
이번 공연은 관습을 깨고 일어서는 작품들이 춤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장석용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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