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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뱅] 샤토 디켐-포도 손으로 수확 ‘최고급 귀부와인’

이성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22 17:18

수정 2014.11.13 16:05



1855년 소테른과 바르삭의 등급에서 프리뫼르 크뤼 슈페리외급에 기록된 와인. 이로 인해 샤토 디켐은 주변 포도원의 와인 가격보다 몇 배 비싼 권세를 누리며 귀부와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샤토 디켐은 아키텐(보르도지방)의 공작부인 엘리너의 소유였다. 엘리너 부인이 프랑스 왕 루이 6세가 되는 루이 카펫과 결혼하면서 샤토 디켐은 그들의 소유가 되었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부적절한 이유로 교황 유진3세에 의해 무효화되면서 파경에 이르고 엘리너 부인이 1154년에 영국 왕 앙리 2세인 앙리 플랜태지넷과 재혼함에 따라 샤토 디켐은 백년전쟁이 끝나는 1453년까지 영국 왕가의 소유가 된다.

그 이후 1593년에 소바즈 디켐 가문이 소유하면서 샤토 디켐은 다시 프랑스 소유로 돌아와 18세기까지 유지된다. 이어 1785년 샤토 드 파귀의 뤼르-살뤼스 가문의 루이 아미데와 프랑수아 조세핀 드 소바즈의 결혼으로 두 가문이 공동 운영하게 된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두 가문은 가진 모든 부를 잃게 되었지만 포도원만은 지켜낸다. 1826년 조세핀은 새로운 셀러를 건설하는 등 포도원 재건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1851년 조세핀이 죽자 그녀의 아들 Lur-Saluces 가문의 후작 안토인-마리가 샤토 디켐을 상속하게 된다.

안토인-마리가 샤토 필오 & 쿠테의 소유주인 가브리엘 바델미 로멩의 딸 마리 제네비에와 결혼하면서 샤토 디켐은 다시 루이 살뤼스 가문의 로멩 베트랑의 소유가 된다.

베트랑은 배수가 잘 되는 적갈색의 토양망을 설치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디켐의 품질을 한 단계 높인다. 그가 죽고 샤토 디켐이 조카인 베트랑 드 뤼 살뤼스에게로 상속되면서 샤또 디켐은 지금의 소유주를 만나게 된다. 20세기 말 럭셔리 그룹 LVMH의 알렉산더 백작이 사토 디켐의 최대 주주가 되면서 가문과 인연이 없는 소유주로 지금까지 운영되어 오고 있다.

샤토 디켐의 포도원은 총 113㏊ 중에서 100㏊만이 포도나무가 재배되고 포도나무들은 80%가 세미용, 20%가 소비뇽블랑, 허가받은 품종 뮈스카델르가 재배되고 있다. 오전 중의 오래 지속되는 짙은 안개와 오후에 평균 기온보다 높은 온도 조건 등으로 발생되는 Botrytis Cinerea (귀부 균)를 이용하고 1800년 이전부터 100% 손으로만 수확한다.수확량은 ㏊당 9㏊ 규모다.


수확한 포도는 3회에 걸쳐 압착(일반화이트 와인은 1회 압착)해 주스상태로 오크통 발효를 하고 다시 새 오크통에서 3년 숙성을 시키면 세계 최고급 귀부와인 샤토 디켐이 만들어진다. 샤토 디켐의 포도원에서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인 ‘Y’도 생산한다.
샤토 디켐은 세계 최고급 와인 중에서 세계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올드 빈티지 콜렉션와인으로 유명하며 숙성 기간도 100년 이상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와인나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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