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은 따뜻한 밥 배불리 먹이고 싶어” 홍팔중자씨

송동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25 15:46

수정 2014.11.13 16:00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숙이와 함께 부엌 아궁이에 솔방울로 불을 지피며 부르던 노래예요. 어렸지만 노래를 꽤나 잘 불렀어요.”

그야말로 산골짜기(경북 달성군 월배면)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엄마와 여덟 살난 딸이 정겹게 부르던 이 노래를 이정숙씨(당시 8세)는 기억할까.

어머니 홍팔중자씨(65·여)가 딸 정숙씨와 아들 정근씨(당시 7세)를 말 못할 가슴 속 사연을 안고 애절하게 찾고 있다. 홍씨는 지난 1974년 남편의 정신질환으로 생활고와 함께 가정이 위기에 처하고 자신마저 병을 얻게 됐다. 하는 수 없이 아이 둘을 미아보호소(서울 청량리 소재)에 보냈다. 가을 날씨가 쌀쌀해 아이들에게 옷을 새로 사서 껴입혀 보냈고 아이들 큰 이모가 보호소에 맡길 때 소장이 “너희들은 남매니까 손을 꼭 잡고 놓치지 말아라”고 했다고 한다.

어머니 홍씨는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적시며 자식을 버리고 키우지도 못한 어미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며 죄책감으로 몹시 괴로워했다. 또 당시에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는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었고 병든 자신의 몸마저 둘 곳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아이들을 맡긴 후 남의 집살이부터 청소부, 파출부 등 그야말로 안해본 일이 없어요. 그때부터는 살아도 죽은 목숨이었지요.” 홍씨는 이제껏 언젠가는 꼭 자식들을 만난다는 일념만으로 재혼도 않고 갖은 고생을 다하며 평생을 혼자 살아왔다.

“요즘은 5년 전부터 온 중풍 때문에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교회 목사님의 도움으로 그런 대로 생활에는 지장이 없어요. 항상 하느님께 자식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죽기 전에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들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만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매일같이 하루에 국수만 한 끼씩 먹고 살았어요. 아이들이 배를 얼마나 고파했는지…. 우선 밥을 실컷 먹게 해주고 싶어요” 라며 긴 한숨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dksong@fnnews.com 송동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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