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명분에 얽매인 분양가 인하/임정효 건설부동산부장

임정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2.26 17:19

수정 2014.11.13 15:54



“분양을 최종 결정하고서도 승인 신청서를 손에 쥐고 망설이다 세월을 흘려보내기 일쑵니다. 지금은 이전보다 힘이 세배는 더 드는 것 같아요.”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분양을 놓고 요즘처럼 고민을 많이 한 때가 언제 있었을까 싶다. 부동산시장이 어렵지만 무엇보다 분양가를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신청하자니 지방자치단체가 승인을 내 줄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지자체 요구대로 분양가를 내리자니 사업성이 없다.

지자체와 분양가자문위원회가 분양가를 합리적으로 검증하면 좋겠지만 시민단체 등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지 요즘은 ‘얼마 이상은 안된다’는 식으로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게 공식이 됐다.

건설업체의 한숨소리는 땅이 꺼질 정도다.
“금융 비용을 한달에 몇 억원씩 물고 있는 만큼 웬만하면 빨리 털어버리고 싶지만 분양가 인하 요구 폭이 너무 커서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온다”며 하소연이다.

괴로운 일은 이뿐 아니다. 요즘은 분양가를 검증할 위원회가 제대로 열리질 않는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분양가검증위원회를 만들어놨지만 주요 구성원인 대학교수들이 방학을 맞아 외유 중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체 임원은 “이전엔 승인 신청하면 1주일 만에 결론이 났기 때문에 분양 일정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뒤죽박죽”이라고 했다.

이런 건설업체들의 고통을 두고 일각에선 “분양가 폭리 취하더니 고소하다”는 사람들도 적지않은 듯 하다. 그러나 결코 고소해 할 일이 아니다. 그 후유증은 소비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당장 분양 지체로 공급이 위축되는 것부터 소비자들에겐 손해다. 무엇보다 과도한 분양가 인하는 후유증이 우려된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자선사업할 리는 만무한 일이다. 실제로 건설업계에선 ‘품질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란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건축 단가는 뻔한 데 땅값은 그대로 두고 분양가만 낮춰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자재가 저급품으로 바뀌고 부실 공사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벌써 하청업체들은 “우리만 죽어난다”며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다. 분양가 하락이 하청업체에 전가될 것이 확실시되면서 전문 건설업체들이 난리다. 아파트 건설은 대형 건설업체들이 다 하는 것 같지만 골조공사 등을 빼고나면 대부분의 작업은 전문 건설업체들이 한다.

분양가를 낮추려다보니 마이너스 옵션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지 사실 분양가가 떨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인테리어를 개인적으로 하면 돈이 더 들어가게 돼 있다.

위원회의 분양가 검증 능력과 독립성 등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최근 지자체들에 분양가 자문위 구성 바람이 일고 있지만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어떤 원칙을 가지고 어떤 사람으로 구성하는지 공개된 게 아무것도 없다. 위원들 중 분양가를 검증할 만큼 현실에 밝은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위원들의 자질에 대한 정부 한 고위공무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원들의 전문성이요? 에이∼ 대학교수들이 뭘 압니까. 다 우리(공무원)가 만들어서 자세히 설명해 주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주는 거지요.

그 사람들이야 별 하는 일도 없이 경력 관리하지요, 연구에 필요한 관련 자료 다 얻어가지요, 용돈 생기지요… 한마디로 땡 잡는거죠. 그래도 위원회에서 한거라고 하면 다들 인정해주잖아요. 공무원들이 했다고 하면 안 믿어주지만.”

분양가를 관리·통제하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 합리적이고도 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명분’만 얻고 ‘실리’는 잃고 있는 것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lim648@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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