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뮤직테라피’ 마음의 병 즐겁게 치료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3.08 18:40

수정 2014.11.13 15:08



<사례 1>

지난 1960년대 인도의 식물학자인 싱 후 박사는 인도의 종교음악을 수초에 2주간 들려주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표피가 두터워졌고 잎사귀의 공기구멍 숫자가 50%나 늘어났으며 세포도 커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논에 확성기를 설치해 음악을 튼 결과 벼 수확량이 25∼60% 늘어나기도 했다. 싱 후 박사는 이런 실험들을 토대로 “화음의 음파는 식물의 생육, 개화, 결실 및 종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사례2>

지난 2003년 경희대 한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현 경희동서신의학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장은 6개의 실험세트에 누에를 넣고 서로 다른 음악을 들려주는 실험을 했다. 5개 세트에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으로 나눈 음악을 틀어주고 나머지 1개 세트에는 아무런 음악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세트별로 서로 다른 형질 변화를 보였는데, 특히 목에 해당하는 음악을 들려준 세트의 누에가 가장 먼저 알을 깨고 부화했다.

위의 두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음악은 식물과 동물의 생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실은 인간에게도 유효하다. 흔히 음악치료라고 불리는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는 이런 논거를 바탕으로 생성된 신흥 학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좋은 음악은 따로 있을까. 어떤 음악이 우리 몸에 좋고 어떤 음악이 나쁠까. 그리고 음악이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음악평론가 장일범씨(39)와 음악치료사 한정아씨(37)가 지난 6일 서울 자양동 나루아트센터에서 만나 ‘우리 몸에 좋은 음악’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이화여대 음대와 동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지난 2002년부터 음악치료사로 활동해온 한씨는 오는 13일부터 6월26일까지 총 8회에 걸쳐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음악이 가르쳐준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뮤직 테라피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음악치료사 한정아,뮤직테라피를 말하다

▲장일범(이하 장)='음악치료'라는 개념이 아직은 좀 낯설다.

▲한정아(이하 한)=치료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이겠지만 음악치료가 꼭 환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심리적인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음악치료는 효과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가령 빈번한 두통으로 의사를 찾아갔다고 가정해보자. 의사가 "아스피린을 먹지 말고 모차르트 음악을 들어라"고 처방을 내린다면 처음엔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악치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음악치료라는 새로운 음악 체험을 통해 음악은 편안한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혜로운 조언자가, 때로는 포근한 안락의자가 되어주기도 한다.

▲장=오는 13일부터 펼치는 '음악이 가르쳐준 비밀'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한=오전 11시에 시작하는 브런치 공연으로 기획된 이번 프로그램은 주부들을 위한 것이다. 늘 분주하고 힘에 부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주부들의 마음을 치유해 드리는 시간이다. 음악치료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음악을 통해 나의 모습을 찾아보고, 다양한 악기를 직접 연주해보고, 음악극의 주인공도 되어 보면서 자신의 내면과 주변 관계 등을 되돌아 보게 된다.

▲장=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접하기 전과 후의 뚜렷한 변화가 있나.

▲한=사실 음악치료가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생활이 바뀔 정도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지속적인 치료를 요한다. 일회성으로 끝나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음악치료는 4∼5명의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것이 원칙인데 이번 프로그램은 40∼5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진행되다 보니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시간마저도 없었던 사람들이 이번 공연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본다. 공연장을 찾았다가 엉엉 울며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장=모차르트의 어떤 음악은 우울증에, 베토벤의 어떤 음악은 두통에 효과가 있다며 선전하는 음반들이 시중에서 팔리고 있다. 음악치료의 관점에서 이런 음반들이 정말 효과가 있나.

▲한=하하하. 음악치료사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이런 것이다. 우울할 때, 머리가 아플 때, 또 배가 아플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을 골라달라는 주문을 자주 받는다.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이런 음반들이 전혀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거다.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과 거리가 먼 노인들에게 이런 음반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음악은 과학이 아니다.

▲장=또 하나 우문을 던지겠다. 음악치료에 사용되는 음악은 클래식 뿐인가, 아니면 그밖의 모든 음악인가.

▲한=음악치료는 클래식 음악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 역시 음악치료에 대한 중대한 오해 중 하나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에 좋은 음악이라는 것은 개개인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전에 한 노인병원에서 음악치료를 할 때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하며 시작하는 옛 노래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 때 그곳에 모였던 모든 분들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짠해진 적이 있다. 또 음악치료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음악치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의 하나다. 음악 감상이 음악치료의 한 방법이긴 하지만 감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장=해설음악회 같은 걸 하다 보면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참 어렵던데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한=한국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수줍음이라는 DNA를 몸 속에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직접 연주를 하게 하는 악기들도 대개는 핸드벨, 마라카스(딸랑이의 일종) 같은 다루기 쉬운 악기나 타악기 위주로 구성한다. 악보를 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또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되니까. 처음이 어렵지 한번 터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술술 풀린다. 끝끝내 참여를 안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분들에게도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마디 말도 안했지만 수다를 떠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스트레스 지수도 높고 자살율도 꽤 높은 편이다. 음악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긴데.

▲한=음악치료는 그동안 특수기관이나 병원 등에서 지체아동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주로 운영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음악치료가 특별한 사람들, 즉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어린이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부들,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는 직장인들에게 음악치료가 더욱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병을 갖고 있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심리적 약점을 하나둘씩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대학과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다가 음악치료로 전공을 바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한=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경험이 나를 음악치료사의 길로 인도했다. 음악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관객을 대상으로 음악을 해설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음악평론가인 나도 넓은 의미의 음악치료사 아닐까.(웃음)

▲한=그렇다고 대답하면 음악치료사들이 들고 일어날텐데…(웃음). 음악치료사는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양성되는 것이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리고 아버지가 한 가정의 음악치료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깊숙이 들어가면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고 치유받을 수 있다. 병원에 갈 수 없을 때 우리의 어머니들이 "엄마 손은 약손"하면서 구음(口音)과 함께 아이들의 배를 문지르면 복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던 것처럼 음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음악의 생활화, 이것이 '즐거운 나의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사진=김범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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