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부터 우림화랑서 김기창 미공개작 40점 선봬
최근 막을 내린 주말 드라마에서였다. 잘나가는 외과의사 부인은 병원 부원장 부인에게 ‘선물’을 건넨다. 운보의 ‘청록 산수’였다. 중년의 부인은 잠시 망설이지만 무척 좋아하는 그림이라며 흔쾌히 받아든다. 바보산수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던 부원장 부인은 외과의사 부인을 다시 보며 챙기기 시작한다.
국내 컬렉터들을 사로잡고 있는 현대미술 강세 속에서 운보 그림은 경매시장에서도 매번 낙찰되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림값은 호당 100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K옥션에서 바보산수(1980·10호)는 950만원에, 청록산수(10호·1981)는 800만원에 팔렸다.
지난 7일 열린 K옥션에 나왔던 운보작품 3점은 모두 낙찰됐다.
■예순에 탄생시킨 바보산수
운보는 17세 때 이당 김은호 문하에서 인물화와 화조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다양한 조형 의지를 분방한 필력에 담아 전통적 사상과 기법적 경지를 창출했다.
운보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우리의 민화를 산수화와 접목시킨 바보 산수·청록산수 등을 발표하며 화단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운보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잊고자 작품 제작에 열중해 지난 76년 5월 ‘바보 산수전’을 열었다. ‘산 그리고 물’ ‘꽃 그리고 새’ ‘사람 그리고’ 등 시리즈 60여점을 출품했다.
바보산수는 관념 산수가 판치던 조선시대 진경산수를 만들어낸 겸재 정선의 작업만큼 우리 미술사에 남을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청록산수는 청록색이 주는 산뜻한 맛, 청산 어디에선가 떨어지는 폭포의 시원함, 용틀임하는 소나무의 튼실한 자태, 여기에 생동감을 주는 인간의 모습까지 기운 생동하는 그림이다.
신체적 장애에도 새로운 세계를 강인한 실험정신으로 승화, 현대 한국화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작가다.
한국화라는 퇴색한 어감과는 달리 운보의 그림은 강렬한 색감과 21세기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감각이 돋보인다.
■‘김기창 다시보기’전 40여점 출품
15일부터 서울 인사동 우림화랑에서 ‘운보선생 빛과 향기-김기창 화백 그림 다시 보기전’이 열린다.
바보산수·화조 등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40여점이 소개돼 운보의 작품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림화랑 임명석 대표는 “현대미술의 과감한 수용과 한국적 재해석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운보만의 독창성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친일화가로 낙인찍히는 등 그의 작품세계가 제대로 조명이 안돼 안타깝다”며 “그동안 우림화랑이 소장한 20점과 개인 소장품 20여점을 운보문화재단의 후원 아래 전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는 8폭 병풍으로 된 ‘홍매도(140×386㎝·87년작)’ 등 미공개작 12점도 나왔다.
미술평론가 이규일씨는 “매화 그림은 다른 화가의 매화도와 사뭇 다르게 나무 등걸도 튼실하고 꽃도 흐드러지게 피어 탐스러운 느낌이어서 이 매화도를 보면 위당 정인보의 매화사가 읊조려진다”며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운보의 작의를 읽어낼 수 있어 이번 전시를 계기로 애호가들에게 운보그림 다시 읽기 독회를 권한다”고 말했다.
인기 작품은 위작도 많다는 지적에 대해 임 대표는 “화랑 주인으로서 운보와 함께 판문점에서 작업을 했고 도록작업에도 참여했다. 긴가 민가하는 것은 뺀다. 이번 전시 작품 선정에 있어서도 진위 문제에 매우 신중했다”고 강조했다.
전지크기 40호(125㎝∼126㎝×64㎝∼65㎝) 작품값은 그림에 따라 2500만∼3500만원에 판매한다. 전시는 30일까지. (02)733-3788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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