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내 그림 이야기…“류병엽의 작품이 서양화냐 동양화지∼”

박현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3.28 16:45

수정 2014.11.13 14:02

■작업할때 99살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른다

내 그림들 속에서 보여지는 선과 색채는 상당히 한국적이다. 언젠가 문득 고찰의 단청이나 석가래의 색들을 보면서 ‘저 속에 내 그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인들 중 한명이 내 그림을 보고 '유병엽의 작품이 무슨 서양화냐. 동양화지.'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면 분할, 오일 컬러, 화려한 색감 등은 서양화에 가깝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서양적이지가 않다. 내용은 동양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내 그림과 meditation(명상)을 견주어보라. 우리의 민족성 속에 있는 불교성과 명상의 맥락에서 내 작품을 보면 된다.

내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중 첫째는 나의 할머니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참 예뻐해주셨다. 여든아홉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없이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시며 안아주시던 모습이 작업을 할 때 종종 떠오른다.

둘째는 직선이 아닌 구불구불한 곡선의 논두렁길, 그리고 고궁의 하늘과 맞닿아있는 기와선, 오래된 소나무 등 한국적인 산과 정취다.

또한 내 그림에는 명암이 없다. 본래 바탕이 나와야지 명암으로 볼륨을 넣는 것은 하지 않는다. 공간감과 원근감은 스며들어 있다. 작품의 마띠에르도 두꺼워 오전와 오후 어떤 햇빛에서 보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기도 한다.

■일백리를 가는 데 구십리까지가 반

行百里者半九十 사람이 100리를 가는데 90리까지가 반이라는 이야기다. 즉, 나머지 10리가 90리 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다.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사람들은 한번 해내는 일을 어리석은 나는 백번까지 해서 달성하고, 보통사람이 열 번으로 해내는 일은 나는 천번이라도 노력해서 달성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나는 이래저래 오늘날까지 왔다.

그림이 안 되고 무척 힘들었던 어느 날 성산대교 교각을 세우는데 갔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새까만 물이 흐르는 그 곳을 내려다보는데 뒤에서 나를 꼬옥 끌어안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림이었다. 그래서 도중하차를 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다.

나를 꼭 끌어안은 그림. 그림이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 2007년 3월 부암동 아틀리에에서
★류병엽(70)화백은 4월4일∼22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0년만에 개인전을 엽니다.
이번전시에서는 그동안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한 100호∼500호에 이르는 미공개 대작 40여점이 공개됩니다.(02)734-6111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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