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범죄물의 탈을 쓴 사랑이야기 ‘쓰릴 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4.16 13:24

수정 2014.11.13 13:16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쉽다. 실제 사건이 충격적일 수록 흥행에는 더 유리하다. 엘리트였던 법대 졸업생 네이슨 레오폴드와 리차드 롭이 저지른 유괴와 살인, 1924년 시카고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 바로 ‘쓰릴 미’다. 여기에 두 남자 주인공의 동성애코드까지 더해졌으니 자극적인 소재는 모두 모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보기전까지는 ‘지루하거나 치사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거라 생각했다.

범죄 심리 묘사극이란 이유로 구구절절 모놀로그를 읊어댄다면 관객들은 하품을 할 것이고 실화를 재연해내는 데 그친다면 실화에 흥행을 빚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사람들을 객석까지 불러 모은 데엔 실화의 힘이 컸다. 대다수 관객들이 공연 직전까지 왜 죽였을까’에 집착했다. “열네살짜리를 그토록 잔인하게 죽인 이유가 뭐지?” “부잣집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지?”라며 사건 자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쓰릴미’는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살인 동기’에 대해선 합리적인 답을 주지 못한다. ‘왜 죽였냐’는 질문에 ‘죽이라고 조종받았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간다. 조종의 대가는 사랑이다. 사랑받고 싶어서 조종당하길 자처하고 사랑하고 싶어서 조종한다.

‘쓰릴미’가 초점을 맞추고자 한 것은 ‘누가 누구를 조종했는가’다.

니체의 초인론에 심취한 ‘그’는 공공연히 “우린 초인이기 때문에 살인도 들키지 않고 해낼 수 있다”고 ‘나’를 꼬드긴다. ‘그’는 극 중반까지 절대악의 상징으로 등장해 불안함과 두려움에 떠는 ‘나’를 종용하지만 막상 검거된 후에는 불행한 범죄자의 모습으로 절규한다. 인간적이기만 했던 ‘나’는 소름끼칠 정도로 냉혹한 초인으로 변하고 막판에는 놀라운 반전이 드러난다. 두 배우가 각각 초인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초인으로 변하는 장면, 클라이막스는 바로 여기다.

그런 면에서 두 배우의 공이 매우 크다. 어지간한 카리스마를 지니지 않고선 90분동안 관객의 시선을 끌 수 없다. ‘나’로 등장한 류정한과 ‘그’ 역을 맡은 김무열의 호흡이 착착 맞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성애 장면을 연출할 땐 보는 이가 아찔할 정도로 실감난다.

류정한의 성량은 공연장 의자를 떨리게 할 정도로 풍부하고 10년 넘게 쌓인 노련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따로 분장을 하지 않고 연기만으로 열아홉살과 중년을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내공에 박수를 보낸다.상대적으로 경력이 짧은 김무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무대에 등장하지도 않은 어린이를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유괴하는 장면에선 소름이 돋을 정도다.

자칫하면 단출해질 수 있는 2인극이지만 영화 못지 않게 흥미진진한 데는 빠른 극 전개와 이야기 중심의 구성도 한몫했다. 단순 재연에만 그치지 않고 두 인물의 심리묘사에 공들인 것도 인상적이다.

결론적으로 ‘쓰릴미’는 범죄물로 포장된 사랑이야기라고 봐야한다.
끔찍한 집착과 맹목적인 복종이 부른 비극, 그 중심엔 사랑이 있다. 제목 ‘쓰릴미’는 극중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나를 가슴 떨리도록 사랑해달라’는 애원의 뜻이고 또 하나는 ‘무료함에 지쳤으니 뭔가 전율이 올만큼 흥미진진한 일(극중에선 범죄를 뜻한다)을 해보자’란 유혹의 말이다. 사랑이 됐건 범죄가 됐건 두 주인공 모두 ‘쓰릴 미’를 외치다 파멸했지만.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