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90세 이성자화백 16년만에 고국서 전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5.15 14:43

수정 2014.11.06 00:26



“삶이 부조리하고 고단할수록 더욱 미래를 그리고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는 이성자 화백(90)의 작품은 ‘형형색색의 폭죽’들이 터지고 있다. 빛과 환희로 충만한 작품 ‘극지로 가는 길’은 그의 대표작이다.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이 화백이 오는 23일부터 16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 제목은 ‘우주의 노래’. 수없이 많은 물감방울, 단청의 알록달록 행성들이 돋보이는 밝고 명랑한 작품들이다.

정교하게 처리된 기하학적 모티브들이 가볍게 요동치면서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듯한 그림은 모든 단절된 것들의 통합과 복구를 나타낸다.



이 화백의 최근 작품은 우주 전체를 관망하고 있다. 우주를 떠도는 유영과도 같은 삶을 살아온 이 화백 자신과 닮았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남 광양 출신인 그는 1935년 도쿄 짓센여대에서 유학하고 귀국 후 외과의사의 아내로 살아갔지만 가정불화와 한국전쟁을 겪던 1951년 아무 연고도 없던 파리로 떠났다.

의상디자인 학교에 들어갔지만 디자인학교 선생은 그가 회화에 재능이 있다고 확신했으며 선생의 조언과 설득에 따라 순수미술을 가르치는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당시 이 학교에는 한국에서 온 작가로 김흥수 권옥연 이응로 김환기 등이 있었다.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 화백은 그들 사이에서 동등한 작가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 화백은 서로를 아무개 화백이라고 부르는 남성 작가들이 그를 ‘마담 리’ 라고 불렀다고 회상한다.

그의 존재가 한국 미술계에 알려진 것은 한·불 문화협정이 체결된 1965년이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미술가들이 드물던 당시 한국 여성이 프랑스에서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화제였다.

1977년부터 이성자와 인연을 맺은 프랑스의 문학가인 미셸 뷔토르는 이성자를 ‘동녘의 여대사’라고 불렸다. 동양과 서양의 넘나들 수 없을 것만 같은 간극을 뛰어넘는 일에 자신의 평생을 바쳤다.


갤러리 현대 도형태 대표는 “이 화백은 한국이 낳은 걸출한 여성 미술가 등 중에서 나혜석과 최욱경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면서 “실존의 부조리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동시대 미학의 자폐적 우울증에서 벗어나 환희에 찬 노래와 춤의 미학을 추구했고 스스로 삶과 예술이 일치하는 조화로운 세계를 완성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밝혔다.

98년 이후 10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90년부터 2007년까지 근작 회화 50여점을 선보인다.
화집 ‘李聖子, 예술과 삶’도 출간됐다. 전시는 6월10일까지. (02)733-6111∼3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