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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김관호 ‘해질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5.17 15:46

수정 2014.11.05 15:34



※대동강변 ‘석양 목욕’ 한국 첫 누드화

"평양의 김관호 군이 동경미술학교 졸업식에서 양화부 전과 졸업생 중 최우등의 영광을 차지했다. 졸업작품은 '해질녘'인데 아주 출중하여 전교의 상찬을 독차지하여 졸업식장에 진열되었다."

"조선인의 그림이라는 여학생들의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려보니 대동강 석양에 목욕하는 두 여인을 그린 김관호 군의 '해질녘'이라, 아아! 김관호 군이여 감사하노라. (중략) 나는 군이 조선인을 대표하여 조선인의 미술적 천재를 세계에 나타내었음을 다사하노라."

■춘원 이광수가 감격한 그림

1916년에 김관호의 유화 '해질녘'이 '문부성전람회'('문전'으로 약칭)에서 특선을 차지한다. 매일신보는 이런 사실을 대서특필한다. 맨 앞의 인용문은 그 기사의 일부이고, 후자는 춘원 이광수가 같은 신문에 쓴 '문전 관람기'의 일부이다.

특히 춘원은 감격에 겨워 "아! 특선, 특선, 특선이라면 미술계의 알성 급제라"며 호들갑을 떤다.

한국 서양화가 1호인 고희동(1910년 일본 유학)으로 시작된 우리의 서양화는, 2호인 김관호(1911년 일본 유학)에 의해서 비약적인 성과를 거둔다. 춘원의 감격에는 이런 사정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기사와 관람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정작 소개되어야 할 '해질녘' 사진이 없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석양에서 목욕하는 두 여인"이 벌거벗은 모습이어서, 사진을 게재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의 미풍양속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사실 동양에서는 누드를 다룬 그림이 없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누드화의 전통이 길다. 이런 누드화를 이해할 만한 전통이 없었던 만큼, 이 땅에서 누드화는 수치스런 외설물이었다. 그래서 사진 없는 기사가 게재된 것이다.

■누드 여인과 자연경관의 어색한 만남

'해질녘'은 한국 최초의 누드화다. 80호짜리 캔버스를 변형한 정사각형의 화면에 대동강과 능라도를 배경으로 물에서 나온 두 여인의 누드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김관호가 당시에 대동강변에서 직접 누드모델을 세워두고 그렸을까? 아니다. 지금도 야외에서 그렇게 그리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당시에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 그는 먼저 실내에서 두 누드모델을 각각 따로 그렸다. 그리고 대동강변이라는 배경과 합성한다. 여기서 다시 의문이 생긴다. 왜 하필이면 야외를 그림의 배경으로 고집했을까?

이는 인상주의의 영향 때문이었다. 인상주의 그림은 어둠침침한 실내에서 벗어나 햇빛이 풍부한 야외에서 그리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다. 그래서 인상주의 그림에는 야외 풍경이 많다. 인물의 경우도 야외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 대부분이다. 김관호가 당시 일본 유학중이었던 만큼, 일본 미술계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 일본 미술계는 인상주의 미술이 풍미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내와 야외 그림을 따로 그려서 합성한 것이다.

김관호의 또다른 야외 누드화는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호수'(1923)도 있다. 호숫가에 누드의 여인이 정면으로 앉아 있는 그림이다. 물론 시선은 고개를 약간 돌려서 땅을 향하고 있다.

의문이 하나 더 있다. '해질녘'의 합성은 자연스러웠을까? 아니다. 오늘날처럼 포토샵 처리가 없어서, 눈 밝은 사람은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합성이 깔끔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드 여인과 배경 그림의 결합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서 있는 바닥도 실재 현장이 아님을 알려주듯 엉성하게 그려져 있다. 게다가 여인들도 빛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 빛이 한쪽에서 비친다면 그림자의 방향이 같은 쪽으로 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두 인체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방향이 제각각인 모순점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석양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을 향해 두 여인이 정면을 보지 않고 등을 돌리고 서 있다. 탄력 있는 육체와 어우러져 석양이 미묘하다. 또 누드의 정면을 보여줌으로써 관람객의 시선 분산을 차단하고, 저물녘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게다가 왼쪽의 여인은 한쪽 다리로 무게중심을 잡은 채 'S라인'을 살리고 있다. 볼륨 있는 건강미가 돋보인다.

■'넘버 2'에서 한국 미술사의 2관왕으로

김관호는 1916년에 국내 최초의 서양화 개인전을 고향인 평양에서 갖는다. 주로 평양의 풍경화들로 개최한 이 전시회는, '해질녘'을 통한 명성에 힘입어 성황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서양화를 체질적으로 소화해낸 최초의 화가이자 전이나 후에도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존재"(오광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관호는 미술대학을 졸업한 지 10여 년 만에 붓을 꺾는다. 당시 사회적인 여건의 미성숙으로, 그림에 대한 의욕을 잃고 고향에서 목재상을 경영한다.

그는 2관왕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김관호는 한국 서양화가로서는 2호로 출발했으나 최초의 누드화와 최초의 개인전 개최로 한국 미술사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즉 '넘버2'였다가 미술사적인 성과로 1위 자리를 선점하는 영광을 누렸다.
'해질녘'은 또 현실과 충돌한 최초의 그림이기도 하다.

■키포인트=출발이 늦더라도 빈 곳을 공략하라. 빈 곳을 선점하되 확실한 성과로 어필하라. 성과 없는 1위는 바람 앞의 촛불이다.
빼어난 성과만이 1위를 부동의 자리로 만든다.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김관호, '해질녘', 캔버스에 유채, 127.5×127.5㎝, 1916 동경예술대학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