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도발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변호사가 변론을 의도적으로 오도하거나 의사가 처방전을 잘못 끊으면 자격을 잃거나 심한 경우 구속되기도 간다. 분식회계를 묵인한 공인회계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기자가 정부 부처의 서류를 슬쩍 하는 등 비윤리적이고 탈법적인 방법으로 챙긴 자료를 이용해 거대한 사회악을 폭로하게 되면 잠시 비난은 받겠지만 그는 퓰리처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일약 유명 인사로 떠오르고 오히려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게 된다. 왜 그럴까. 그는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추구했기 때문이다.정부의 취재 시스템 개선 방안에 관한 논쟁은 언론계에서 시작돼 이제는 정치계·법조계로 옮겨지면서 연일 확전되고 있다. 정부의 미디어 정책과 취재 기본권 또는 국민의 알 권리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그 열기는 불에 델 지경으로 뜨겁다. 보수, 진보를 망라한 전 언론이 정부를 연일 비난하고 있고 정부 부처는 이 같은 언론의 파상공세에 거친 톤으로 반격하고 나섰다. 나아가 청와대는 “취재 윤리를 무시한 관행이 무용담이 되는 시대는 사라져야 한다”며 측면 지원하고 있다.
청와대는 △정책으로 확정되기 전 가안의 서류를 기자가 동의 없이 가져가 해당 공무원이 징계를 받은 사연 △특수시설 공무원이 취재를 허락했으나 기자가 비밀리에 촬영해 처벌을 받은 사례 △기자가 비밀리에 소형 녹음기를 설치해 처벌 받은 사례 등을 공개하면서 이번에야 말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서슬이 퍼렇다. 청와대는 특히 “국민의 알 권리를 앞세우면서 여전히 관행적인 취재 행태를 버리지 못할 경우 해당 언론사와 기자는 단독 또는 특종의 달콤한 열매를 맛보겠지만 그 뒤안길에서 인격권 무시로 피해를 보는 공직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공격의 고삐를 단단히 죄고 있다.
이번 논쟁의 뿌리는 저널리즘에 대한 근본 인식 차이에 있다. 저널리즘의 가장 큰 특징은 가만히 내버려 두기보다는 무엇인가를 쑤셔내어 알리는 데 있고 정책 입안자들은 대개 뭘 감추는 데 있지 않은가. 늘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다 부채질하는 것은 인간의 이중적인 판단기준이다. 공권력이 우리를 감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칠게 반발하면서도 명백하게 탈법적인 몰래 카메라가 들추어 낸 고위 관리들의 부정과 불법사례를 보며 쾌감을 느낀다. 작업장에서 설치된 폐쇄회로 TV에 대해서는 인격이 무시됐다며 노여워하지만 마약수사를 위한 불법 카메라에는 필요악이라며 당연시한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평생 좋아하고 찬양한 사람은 칸트다. 그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인간의 양심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이라며 늘 감탄해 왔다. 그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행위 자체의 도덕성에 무게 중심을 뒀다. 따라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벤덤, J S 밀 등이 주창한 공리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칸트에 따르면 문서를 훔치거나 몰래 카메라를 동원한 취재의 경우 아무리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던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학자들은 이 같은 칸트의 윤리관을 융통성 없고 비현실적이어서 수긍하기 힘들다고 한다. 현실에서 취재윤리의 절대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주장이다.
더욱 중요한 도덕적 명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도덕한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경우가 취재현장에서는 종종 발생한다. 고위 관리의 뇌물 수수현장이나 인질범과의 취재 과정에서 몰래 카메라를 동원할 때 과연 그러한 행위를 비윤리적이고 탈법이므로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취재 시스템 개선과는 별개로, 취재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껴안고 갈 수는 없을까.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언론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공공의 이익추구에 있기 때문이다. 설경구가 주연한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가 호응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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