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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김명국 ‘달마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6.07 14:31

수정 2014.11.05 13:27



※더할것·뺄것 없는 선과 여백의 예술

서양화와 동양화의 차이는 도구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서양화는 선이나 채색이 잘못되면 덧칠을 하여 수정을 하면 된다. 하지만 동양화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종이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까닭에 선을 잘못 긋는 순간 망친 그림이 된다. 그림도구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이런 차이는 또 사유의 차이를 낳는다.

서양화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숙성시켜 가면 된다. 하지만 동양화는 그래서는 안 된다. 지면 밖에서 충분히 생각을 완숙시킨 후 붓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한달음에 그림을 그리면 된다. ‘일필휘지(一筆揮之)’ 말이다. 여기서 ‘일필’은 깊은 생각으로, ‘휘지’는 그것의 실천으로 읽을 수 있다.

■달마도의 지존

연담 김명국(1600∼?)의 ‘달마도’는 일필휘지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준다. 현존하는 달마도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부리부리한 눈과 우뚝 솟은 매부리코, 텁수룩한 콧수염과 턱수염에서 선승의 호탕한 성격이 느껴진다. 극도로 절제된 묵선과 힘찬 운필, 꽉 찬 여백이 깊이를 더한다. 이 여백은 묵언으로 참선을 하는 선(禪)의 침묵과 통한다. 또 먼 곳을 향한 달마의 시선은 영원의 진리를 갈구하는 선승의 표징이다. 9년간의 면벽참선으로 응결된 달마의 정신세계를 한두 번의 붓질로 시원스럽게 표출한 것이다. 이 힘찬 묵선과 여백의 응집력이 압권이다.

‘달마도’는 중국 선종의 시조로 알려진 ‘보리달마’를 그린 그림이다. 달마(5세기말∼6세기 초)는 본래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일찍 출가하여 대승불교의 승려가 된 그는 남북조시대에 중국으로 건너간다. 9년간 면벽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선종을 창시한다. 하지만 양나라 무제의 부덕과 오만함을 질타했다가 괘씸죄에 걸려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다. 관 속에 짚신 한 짝만 남긴 채, 살아서 서쪽으로 떠난다. 이후 달마는 불교계에서 깨달음과 선의 세계, ‘선무도’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따라서 ‘달마도’에는 선의 세계가 담겨 있어야 한다. 연담의 ‘달마도’가 ‘최고’로 불리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게다가 소림권법의 창시자이기도 한 달마의 풍모까지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17세기의 ‘한류 스타’

연담은 도화서의 화원으로,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성격이 호방했던 그는 또 하나의 호가 ‘취옹(술 취한 늙은이)’일 만큼 지독한 ‘술꾼’이었다. 게다가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었다. 대부분의 그림이 취중에 그려졌다고 한다.

이 ‘달마도’도 취중에 그린 것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에서 그렸다는 점이다. 연담이 통신사를 따라 갔던 시기는 일본에서 선승화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의 필치와 기질은 일본 화단과 맞아떨어졌다.(유홍준) 그래서 연담의 그림은 일본인에게 인기 폭발이었다. 1643년 통신사행 때는 “연담 같은 사람이 오기를 바란다”고 일본에서 특별히 요청까지 할 정도였다. 또 연담이 달마도를 그려주지 않자, 군함을 몰고 가서 조선을 침공할 것을 본국에 진언하기까지 한다.

그는 17세기의 ‘한류 스타’였다. 당시 일본인에게 적잖은 양의 그림을 그려준다. 이 그림도 그중의 하나다. ‘달마도’는 오랫동안 일본에 보관되어오다가 우리 박물관에서 사 들여와서 소장하고 있다.

■‘달마도’의 죽비소리

달마도는 구도의 수단이자 예술혼의 상징이다. 참선하는 선승들은 달마도를 그리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화가들은 달마도에 자신의 예술혼을 담았다. 세상과 격리된 경지에서 수행의 진수를 보여준 달마의 행적은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기에 족했다. 그런 만큼 달마도의 진가는 ‘무심’과 ‘자유’, ‘공’ 같은 선의 세계를 그림으로 얼마만큼 구현했는가에 달려 있다.

연담의 ‘달마도’는 일체의 기교가 걸러진 선과 여백의 예술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강조할 것만 강조했다. 얼굴의 담묵과 두건이나 옷의 농묵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생각을 깊이 발효시킨 뒤, 붓을 들어 단숨에 그린 듯하다.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한다.

연담은 ‘달마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묻는다. 평소 생각은 충분히 묵혀서 행동하는가, 잔재주를 피우지는 않는가, 생활의 군더더기는 없는가,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가, 질문은 끝이 없다. 이 그림이 인상적인 한 이유도 이런 질문 때문이 아닐까? ‘일필’로 ‘휘지’하라! 빠르고 힘찬 묵선이 죽비처럼 가슴을 친다.

■키포인트=사람에 따라서는 행동을 먼저 하고 생각을 펴는 경우가 있다.
또 생각을 충분히 숙성시킨 뒤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생각이 깊은 만큼 행동이 신중해진다는 점이다.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김명국, ‘달마도’, 종이에 수묵(족자), 83×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