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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이경윤 ‘고사탁족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6.28 15:42

수정 2014.11.05 11:46



※옛사람의 피서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쉼표’

시원한 산과 바다가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무더위에 지칠수록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기다려지는 것이 피서다. 일상의 스트레스도 휴가철의 피서를 생각하면 견딜 수 있다. 틈틈이 계획을 세우고 피서지를 물색한다. 모두들 피서에 ‘올인’하는 태세다.

피서는 삶의 쉼표를 만드는 일이다. 쉼표를 통해 활력을 충전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업무에 매진하게 된다.

현대의 피서는 생산적인 피서가 아니라 놀고 먹고 마시는 보신(補身)의 피서에 가깝다. 하지만 선조들의 피서는 다르다. 특히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피서는 ‘수신(修身)’의 의미였다. 시원한 폭포를 관조하는 ‘관폭’, 찬물에 발을 씻는 ‘탁족’, 책을 접하며 더위를 잊는 ‘독서’ 등으로 피폐해진 심신의 활력을 회복하곤 했다. 우리는 이런 피서법을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2인극’으로서의 ‘고사탁족도’

낙파 이경윤(1545∼1611)의 ‘고사탁족도’는 찬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의 피서법을 보여준다.

호젓한 시냇가의 그늘 아래, 한 선비가 바위에 걸터앉아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 도포자락을 풀어헤친 선비는 불룩한 배와 가슴까지 드러내고 있다.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다리를 꼰 자세다. 격식 없는 모습이 자유롭다. 일상의 번잡함도, 부인의 잔소리도, 아이들도, 친구들도 신경 쓸 그 무엇도 없다. 맑고 시원한 물소리만 청아하다.

이런 자세는 조선시대의 탁족놀이와 통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탁족놀이는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평민에서부터 양반까지 두루 즐긴 여름 풍속이었다. 그런데 서민들과 달리 선비들에게 탁족은 발 씻기가 목적의 전부는 아니었다. 다른 목적이 더 컸다. 시원한 폭포수를 맞는 ‘물맞이’나 ‘목물하기’ 같은 피서법이 있었음에도 이런 내용의 그림을 하나도 없고, 신기하게도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들뿐이다. 왜 그랬을까. 왜 선비들은 탁족에만 관심을 보였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그림부터 자세히 보자. 이 그림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고사탁족도’의 정형화된 형식은 선비 한명만 등장하는 것이다. ‘1인극’이다. 낙파의 또 다른 ‘고사탁족도’가 그렇다. 이 그림에는 등장인물이 선비 한 명인데, 물에 발은 담근 채 다리를 꼰 포즈가 동일하다. 하지만 지금 살펴보고 있는 ‘고사탁족도’는 파격적이다. 시중을 드는 동자가 출연한다. 그런데 동자는 빈손이 아니다. 술병을 받쳐 들고 있다.

낙파는 왜 술병까지 등장시켰을까. 옛 선비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시·술·거문고 같은 풍류를 즐기는 것은 교양이었고, 인격수양의 중요한 방편이었다. 술병은 낙파의 교양이 투영된 물건이다. 호젓한 자연 속에서 탁족을 하며 술 한 잔을 곁들이는 운치는 교양있는 선비의 인격수양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낙파는 ‘고사탁족도’를 ‘2인극’으로 재구성하여, 풍류의 의미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선비들에게 피서는 단순히 더위를 피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시원한 물과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되, 수신도 겸한 것이었다. 흠모하는 성현들이 수행한 탁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엿가락처럼 늘어진 마음의 현을 조율했다. 탁족도를 그리거나 감상하는 과정은 곧 인격수양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성현들이 수행한 탁족의 의미란 무슨 말인가.

고사(古事)를 가진 모든 한자가 그렇듯이 탁족에 실린 의미도 만만치 않다. 탁족은 중국의 고전인 『초사』의 내용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초사』의 ‘어부’편에 보면 어부와 굴원이 문답을 하는 대목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 맹자는 이 구절의 의미를 자신의 처신 방법과 인격수양 여부에 행복이나 불행이 달려 있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수신’하는 선비의 피서

낙파의 탁족도 그리기는 이런 어부의 말과 성현들의 탁견을 저작하는 행위였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구겨진 처신을 반듯하게 다림질하곤 했다.

쉴 새 없이 일하고, 숨 돌릴 틈 없이 달리는 현대인에게 빠른 것은 미덕이다. 하지만 속도는 자기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이 숨막히는 속도전의 시대에 어떻게 인생을 음미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자기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기갱신을 위한 피서 같은 시간 말이다. 그런데 현대인에게 피서는 먹고 논다는 의미가 강하다. 즉 마음의 수련보다는 몸을 생각하는 보신에 무게가 실려 있다. 유익한 배움과 자기수련이 보신과 균형을 이루는 피서, 우리가 선비들의 탁족 놀이에서 배울 점이다.

※키포인트=시인 고은은 시 ‘그 꽃’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모두들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다른 것은 관심 밖이다. 달리고 있으면 앞만 볼 수밖에 없다.
잠시 멈춰 서보자. 비로소 ‘꽃’이 보일 것이다.

artmin@hanmail.net

■도판설명=이경윤, ‘고사탁족도’, 비단에 담채, 27.8×19.1㎝, 조선시대(국립중앙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