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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계발 전략] 도상봉 ‘정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07.19 16:21

수정 2014.11.05 09:36



※백자와 사랑에 빠진 서정 화가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모네의 수련, 드가의 무희,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나목과 여인 등. 화가마다 특별히 애정을 갖는 소재가 있다. 이런 소재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화가의 ‘마음의 표정’이다.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사랑하면 상대방을 마르고 닳도록 봐도 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화가들이 소재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줄기차게 같은 소재를 그려도 지치지 않는 것은 소재에 대한 화가들의 특별한 애정 때문이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같은 소재만 계속 그릴 수 있을까 싶지만 당사자한테는 그렇지 않다. 동일한 소재도 그릴 때마다 다르다. 세잔이 매혹된 생트 빅투아르 산은 이를테면 ‘샘이 깊은 물’이었다. 그려도 그려도 마르지 않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단골 소재는 백자항아리

국내 미술시장에서 라일락이 꽂힌 백자항아리 정물화로 주가를 올리는 도상봉(1902∼77). 그에게 백자항아리는 아주 특별한 소재다. 평생 애정을 쏟을 만큼 그는 조선시대 백자항아리를 사랑했다. 도상봉 회화의 본령으로 평가받는 정물화의 주인공도 당연히 백자항아리였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우인 이조백자들도 항상 그 속에 미소를 띠고 있다. 그리하여 아침저녁 광선이 변할 때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백색의 변화와 항아리 속에서 울려나오는 무성의 노래는 신비한 교훈과 기쁨을 던져준다.”(1955)

한국현대미술사에서 백자항아리를 사랑한 화가는 도상봉 외에도 수화 김환기가 있다. 집안의 마루 밑까지 백자항아리가 가득 찼을 만큼 수화는 백자항아리 애호가였다. 수화의 그것은 입체감이 없는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에 도상봉의 백자항아리는 질감이 느껴질 만큼 사실적이다. 진짜 항아리를 보는 듯하다. 그는 후기로 갈수록 추상화로 나아간 수화와는 달랐다. 수화의 후기 그림에서 백자항아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도상봉의 백자항아리는 연륜과 더불어 무르익는다.

그의 정물화는 마치 백자항아리를 그리기 위해 선택한 장르처럼 보일 정도다. 이런 의구심은 정물화의 장르적 특성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정물화는 화가가 자신의 세계관에 맞게 사물들을 마음대로 배치해서 그린 그림이다. 그만큼 작가의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장르가 정물화다. 이런 맥락에서, 화가가 백자항아리를 정물화의 중심에 두었다는 점은 그것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소재임을 암시한다 하겠다. 그는 집요하게 ‘백자항아리에 의한, 백자항아리를 위한’ 정물을 그렸다.

■‘노력형 화가’와 아카데미즘

도상봉이 한결같은 자세를 유지한 데는 두 가지 이유를 꼽아볼 수 있다.

먼저 그가 ‘노력형 화가’라는 점이다. 이십대에 이미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을 수상한 이인성처럼 결코 ‘천재형 화가’는 못되었다. 물방울이 모여서 바위를 뚫듯이, 한결같은 자세로 회화세계를 심화시킨 그는 대기만성형 작가였다. 초기의 그림이나 만년의 그림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묵묵히 원숙미를 축적해간 것이다.

다음으로 그가 ‘아카데미즘’을 강조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미술에서 아카데미즘이란 진취성이 거세된 진부한 그림을 상징한다. 부단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속성에 비춰보면, 대상의 묘사에 충실한 아카데미즘은 구태의연한 방식처럼 보인다. 이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기법은 과거 ‘대한민국미술대전’(일명 ‘국전’)을 장악하기도 했다. 도상봉은 아카데미즘 계열의 주요 화가였다. 성실하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 아카데미즘 화풍과 노력하는 자세는 ‘찰떡궁합’으로 보인다.

■마르지 않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

도상봉의 백자항아리는 ‘일인다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나의 백자항아리가 여러 그림에 겹치기 출연을 할 정도였다. 주둥이에 꽃만 바꿔 문 백자항아리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는 백자항아리에 대한 사랑의 농도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예술적 영감을 자극했던 백자항아리는 두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항아리와 주둥이 가득 꽃송이를 물고 있는 항아리가 그것이다. 꽃도 국화, 개나리, 라일락, 튤립, 안개꽃 등 다양하다. 이런 화면은 구도가 극히 단조롭다. 그러면서 묘하게도 안정감을 준다. 항아리 단독 출연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비어 있으면서도 은은하게 차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소재를 향한 화가의 애정 때문이 아닐까. 찻잔에 찻물이 스미듯 백자항아리에 스민 화가의 애정이 온기의 근원이 아닐까.

마음이 넉넉하면 얼굴에 화색이 도는 법이다. 사물을 향해 넘치는 애정도 숨길 수는 없다. 도상봉의 정물화가 풍기는 따뜻하고 중후한 느낌도 실은 화가가 그림에 비벼 넣은 애정의 빛깔일 수 있다. 나아가 이런 그림에 비춰보면 작품 감상이라는 것도 조형적으로 표현된 화가의 애정을 맛보는 과정이라 하겠다. 도상봉의 그림은 이런 점을 고요히 웅변한다. 백자항아리는 그가 평생 사귄 ‘친우’였다.


■키포인트=당신은 아끼는 물건이 있습니까? 이 물음은 곧 당신이 애정을 쏟는 물건이 있냐는 뜻이다. 지극한 애정은 나와 무관한 사람도 아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상대방이 좋다면 그것은 내가 기울인 관심과 애정이 그만큼 두텁기 때문이다.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도상봉, ‘정물’, 캔버스에 유채, 72×91㎝,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