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 왕국' 한국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2006년 말 현재 65세 이상 노인은 45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이르고 있다. 불과 10여년 뒤인 2018년에는 노인 인구는 전체의 14%를 넘어서고 2026년에는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에 들어설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노인 인구의 급증은 생산에 들어가야 할 많은 재원을 이들의 부양을 위해 쏟도록 하는 등 국가경제에 큰 부담을 주는 만큼 노인들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인층을 은퇴한 존재가 아닌 산업예비군(액티브 시니어)으로 활용하면 고령화 시대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종보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사업운영국장과 이인재 한신대 재활학과 교수,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경영학 박사, 김수봉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친화산업팀장에게 노인들의 활용방안 등을 지상대담 형식으로 들어봤다. <편집자주>
―급속한 고령화는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 가고 있는 우리나라와 우리 경제를 재앙에서 구해 줄 해법은 없을까요.
▲김정한=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회의 고령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16년과 2018년을 정점으로 각각 생산가능 인구와 총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그간 상대적으로 노동시장에 참여가 미흡했던 고령자의 효율적인 활용이 절실하다.
▲정종보=노인들을 노동인구로 활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국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노인들의 노동욕구가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추계해 보면 2006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459만명 중 노동욕구가 있으나 일자리가 없어 취업하지 못한 노인이 54만명(11.8%)에 이르고 있다. 잘만 이용하면 노인들이 국가의 주요한 인적자원으로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노인 인구를 활용하면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나요.
▲이인재=노인들을 노동시장에 편입시키면 경제활동 인구의 공급 부족이 어느 정도 보완될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부족한 인력이 채워지는 셈이다. 게다가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노인을 지원하는 일은 일을 하는 노인을 지원하는 것보다 당연히 더 많은 국가의 재정부담을 가져온다. 따라서 노인들을 활용하면 국민연금, 건강보장 등 노인들에 대한 국가의 사회보장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정종보=국가뿐 아니라 사회나 개인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일하는 노인들이 많아지면 소외된 노인들이 파고다 공원이나 경로당 등에서 할 일 없이 무리지어 있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노인들이 여러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사회가 밝아지고 의료비 절감 등 사회적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노인부양의식 약화 등으로 노후에도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노인 개개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정부도 노인인구 활용의 중요성을 깨닫고 노인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정부의 노인일자리 사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종보=정부는 노인에게 인건비를 직접 지원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4년 3만5000개를 시작으로 해마다 늘려 올해에는 약 11만개의 노인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노인들은 참여하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해마다 18만7817원의 의료비를 덜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인일자리에 참여한 노인들의 빈곤율도 4.3% 줄었다. 이를 종합하면 노인일자리 사업은 노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인재=노인일자리 사업은 노후소득보장정책과 노인 활용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상황에서 노인들에게 일정 정도 소득을 보장하면서 사회참여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나 지원수준이 충분하지 못하다. 노인들의 노동력 수준에 따라 일하는 업종과 방식이 달라져야 하며 이에 따른 지원수준도 다양해져야 한다. 노인일자리사업을 이행하는 민간기관의 확대와 내실화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노인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김수봉=정부가 재정부담을 늘려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지속성을 확보하기 힘들고 일자리 참여자들도 수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거시적인 차원에서 ‘노인인력직업훈련공단’ 등을 세워 노인을 위한 체계적인 재훈련, 직업훈련을 벌여야 한다. 이를 통해 노인들을 민간부문에서 필요한 노동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의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노인에 대한 인식개선도 선행돼야 한다. 노인들을 일률적으로 도식화하지 말고 주어진 능력을 평가해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종보=노인 노동시장에서도 청장년 노동시장과 마찬가지로 사회나 기업의 필요에 의해 일자리가 확대 재생산되는 시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과 노인의 욕구가 맞아떨어지는 영역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 시범사업 중인 아파트택배 거점화 사업을 보면 노인입장에서는 노동강도가 높지 않은 일을 통해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고 기업입장에서도 유통구조 개선으로 매출을 높일 수 있어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적정 인프라를 조성하고 체계적인 노인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법적·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노인일자리사업지원법’(가칭) 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정한=고령자를 65세 이상과 65세 미만으로 구분해야 한다. 특히 60세 미만에 대해서는 임금근로자로서 계속 고용될 수 있는 각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고령자고용환경개선 융자지원사업, 고령자신규고용장려금, 고령자다수고용장려금, 정년퇴직자계속고용장려금, 임금피크제보전수당제도, 고령자고용안정컨설팅비용지원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이 65세가 되는 2033년에는 65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서는 임금근로자로 계속 고용하는 방법도 마련될 수 있지만 주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노인들의 취업의욕에 부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재취업을 위해 노인들 스스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김수봉=노인들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노인들이 일생 동안 습득한 지식과 숙련을 활용할 수 있게 기반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년연장과 관련된 법제도와 평생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령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들에 혜택이 돌아가게 하거나 노사 간의 협의를 위해 고령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 등이 요구된다.
▲김정한=평생직업시대에 부합하는 직업능력을 개발해야 하고 시대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배양해야 한다. 물론 건강 유지가 바탕이 돼야 한다. 노동조합은 노인 고용을 위해 생산성 향상에 대해 적극 협력해야 하고, 배치전환 등 이동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임금인상 위주의 노동운동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령친화산업(실버산업)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데.
▲김수봉=우리 경제발전은 소비성장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80년대 이후의 성장은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의 왕성한 소비가 밑바탕이 됐다. 이들이 은퇴하는 2010년도 이후에도 이들은 주요 소비층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들의 소비심리를 유발하지 못하면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도 없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고령친화산업을 성장동력산업으로 삼아야 한다. ‘고령친화산업 상설 전시장’ 설치 등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실버산업에 대한 노하우가 축적된 미국·일본 등의 시장개방 압력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인재=고령친화산업을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 수요자를 국내에서만 찾지 말고 중국 등 아시아 나아가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다는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
/star@fnnews.com 김한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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