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칼럼] 진실캐기 계속해야/박희준 논설위원

박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중국의 고전 베스트 셀러 작가인 마수취안은 국내에서도 꽤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모략의 즐거움’이라는 처세법을 다룬 책 하나로 소설 ‘형제’로써 인기몰이를 한 위화에 견줄 만한 자리를 차지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모략의 즐거움’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여자 황제였던 측천무후 밑에서 활약했던 악독한 관리 내준신이 지은 나직경(羅織經)을 현대감각에 맞게 풀이한 것으로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악랄하고도 치밀한 모략의 사례들을 통해 냉철하게 현실에 대처하는 관료들의 생존 비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권모술수’에 대한 설명을 한번 보자. 마수취안은 “음모와 속임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매우 실용적이고 효과적이어서 설사 군자라 해도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소인배들은 금과옥조로 떠받들면서 안간힘을 다해 모색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나직경은 “선량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린다”는 이유에서 금서로 낙인찍혀 역사에서 사라졌다. 또한 권모술수와 배신이 과거 중국 역사에서 처세법이었을지 몰라도 충성과 정절을 목숨과 바꾼 도덕군자들도 적지 않았던 만큼 역사의 전부를 말한다고 장담하기 어렵고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삶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귀담아 들을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도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 보라. 서울의 한 대학은 가짜 박사학위자를 임용해 파문을 일으켰지만 본인은 물론, 임용에 관련된 사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소설 같다”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라는 말이 난무했지만 정권 실세가 신정아씨를 비호하고 임용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검찰의 압수수색 결과 속속 드러났다.

부산의 한 건설업자는 거액의 후원금을 386 실세 정치인에게 제공했다고 실토했지만 그 정치인은 “대가성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돈다발 뇌물로 지역의 관급공사를 싹쓸이해온 건설업자의 사업 관행을 감안할 때 이를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정녕 그렇다면 그는 순진하거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검찰 수사에서 진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자처럼 드러나면 뭐라고 해명할까.

또 있다. 서민들이 집을 장만해 그 정확한 넓이를 알려고 해도 일부 중개업자와 건설업자들은 “불편하다” “혼란을 준다”는 이유로 ‘평’을 써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어릴 때 한 평이 정확히 얼마냐고 어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가마니를 반으로 쪼갠 넓이”라고 말씀했다. 그러나 가마니 크기는 동네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아직까지도 ‘평’을 그대로 써야 한다니 참으로 한심한 주장이지만 그게 통용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요즘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서 배울 만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속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정아씨 파문의 본질은 속임수에 있지 학벌 위주의 사회에 있는 게 아니다. 신씨 개인이 속였고 임용자들이 이를 눈 감아줬다는 사실이다.

가짜 박사를 교수로 임용하면 열심히 공부한 진짜 박사의 기회를 박탈하고 선량한 학생들이 질 낮은 수업을 받는 피해를 낳을 것쯤은 뻔히 알 텐 데도 버젓이 이를 자행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선량한 서민들에게 손실을 감수하라고 감히 말하는 뻔뻔스런 업계의 요구에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권모술수와 모략이 여전히 유효한 처세술이 되고 있는 현실에 다시 한 번 경계심을 품어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실규명 노력을 더욱 더 기울여야 한다. 거짓 해명으로 감추려 할수록 숨어 있는 진실의 가치는 더 빛을 발하는 것이며 그것을 캐내는 일은 그래서 더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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