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교육일반

[fn 똑똑한 논술] 논술 시네마 ④ 제리 맥과이어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제리(톰 크루즈)는 유능하고 승부욕 강한 스포츠 에이전트다. 예쁜 약혼녀와 결혼까지 앞두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자신의 직업과 삶에 회의가 밀려든다. 선수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자신의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모습에 환멸을 느낀 제리는 밤을 새워 제안서를 써내려간다. 에이전트 본연의 역할인 선수 보호와 경기 능력 향상을 외면하고 오직 선수의 몸값을 올려 커미션을 챙기기에 바쁜 스포츠 에이전시의 현실을 비판하며 ‘성공하려면 인간관계가 핵심’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돈보다는 인간적인 관심을 기울여 고객의 수를 줄이고 선수가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도록 사업 방향을 전환하는 한편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요지의 제안서를 회사에 배포한 제리. 제안서를 본 동료들은 겉으론 제리의 용기를 칭찬하지만 속으론 제리가 곧 해고당할 것이라고 냉소한다.

제안서를 통해 제리는 위선적 삶으로부터 벗어나 인생의 참모습을 위한 청사진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회사로부터의 해고 통보였다. 스포츠 선수의 매니지먼트를 통한 이윤창출이 최고의 목표인 회사 입장에선 제리의 제안서 따위는 수익을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제리의 해고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제리가 관리하던 선수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만다. 동료들은 그가 관리하던 선수들을 빼내가기 바쁘고, 약혼녀는 파혼을 선언한다.

제리에게 남은 사람이라곤 별로 유명하지 못한 풋볼 선수 로드(쿠바 구딩 주니어)와 제리의 제안서에 동감한 경리과 여직원인 도로시(르네 젤위거)뿐이다. 제리는 로드를 성공시켜 제안서에 담긴 자신의 신념과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에이전트로서 재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까탈스러운 로드의 요구와 성격을 맞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번번이 제리를 난처하게 만들던 로드는 제리가 원하는 자신과의 관계가 단순히 선수와 에이전트의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신의와 우정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된다. 로드는 제리의 꾸준한 성원과 관심에 힘입어 경기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고, 제리는 로드가 명문 풋볼 팀에서 1120만달러 연봉을 받으며 뛸 수 있도록 계약을 성사시킨다.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되는 순간이며, 제리의 제안서에 담긴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경영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무엇보다 중시되는 생산성, 효율성, 이윤창출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함으로써 인간소외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가령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서 전면적으로 시행된 구조조정은 그 단적인 사례다. 경기 악화로 인해 저하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중소기업을 가릴 것 없이 인력 감축이 횡행하던 시장 논리의 저변에는 임금 노동자를 기업 효율성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는 IMF 이후 노동 유연성이 날로 높아진 오늘날 더욱 심해졌다. 인간적 관계에 바탕을 둔 경영은 영화 속 제리에게나 가능한 허구이며 낭만적 상상일 뿐일까.

외환위기 당시 국내 한 제지 기업의 경영 전략은 이런 의문에 실마리를 던져준다. 여느 기업처럼 경제위기로 인해 제품 수요가 줄어 재고가 쌓이고, 잉여 인력 비율이 치솟아 구조조정 위기가 감돌던 이 기업은 인력감축 대신 인력유지를 통해 경영의 효율성을 도모했다. 전체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고 줄어든 노동시간을 충분한 휴식으로 활용하는 한편, 회사에서 제공하는 평생 학습체제를 통해 직무능력을 높였다. 이를 통해 기업은 경제위기 기간에 매년 1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고용조정 없는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사람 중심의 혁신전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위에 소개한 제지기업의 사례와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가장 큰 메시지는 사람중심의 경영철학의 중요성(또는 가능성)이다. 영화 속에서 제리가 위선적인 에이전트인 자신에게서 느꼈던 자멸감은 서로를 수단으로 삼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낯선 감정이 아니다. 우리가 ‘제리 맥과이어’에 공감하는 만큼 제리가 선택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경영철학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엘림에듀 대표강사 조정영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