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궁녀 ‘악마적인 사랑’의 공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0.11 10:38

수정 2014.11.04 22:15

■궁녀/(각본/감독 김미정/제작 영화사 아침)

한땀한땀 허벅지에 수를 놓고 있다. 금실로 새겨진 글자들로 허벅지는 유혈이 낭자하다. 그녀가 간직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한 남자를 떠올리는 그녀(수방궁녀·임정은)의 사랑은 잔인하고 혐오스럽다.

빨갛게 단풍이 물들어가는 이 가을, 스크린은 시뻘건 잔혹극으로 물들었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궁녀’는 ‘왕의 여자’들의 숨길 수 없는 욕망을 담았다.

겉으로는 ‘그림자같은’ 궁녀들의 생활을 다뤘지만 여자들의 암투와 파괴적인 사랑의 고통을 보여준다.

칠흑같이 어두운밤. 으리으리한 구중궁궐을 따라 점점 작은 불빛으로 움직이는 화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수풀이 우거진 산속 달빛아래에서 댕기머리를 한 여자(박진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발버둥치고 있다. 나무둥치에 이어진 끈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온 힘을 쏟고 있다. 아이의 우는 목소리가 어둠속에서 울리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난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서까래에 목을 맨 궁녀 월령(서영희)의 시체가 발견된다. 내의녀 천령(박진희)은 치정 살인이라고 주장한다.

목을 매고 죽었다면 눈을 뜨고 입을 벌리고 죽을 수가 없고 젖가슴에, 저고리에 젖이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아이를 출산한 후 변을 당한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궁에 들어오는 순간 몸과 마음을 왕에게 바치는 궁녀는 남자와의 정분이 있어서도, 그런 소문이 나서도 안 된다.

무표정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감찰상궁(김성령) 등 서열높은 궁녀들은 이 사건을 조용하게 처리하려고 자살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천령이 타살이라는 주장을 굳히지 않고 미궁속을 파헤칠수록 궁녀들의 치열한 암투가 드러난다.

희빈의 매를 대신 맞는 월령과, 그런 월령에게 “괜찮아” 하고 걱정하는 희빈, 두사람의 분위기가 묘하다.

궁녀에서 후궁이 된 희빈(윤세아)에겐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

왕의 침실은 ‘왕의 DNA’(권력)를 차지하기 위한 여인의 몸부림으로 뜨겁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리를 지키려는 궁녀의 사랑은 악마적이다.

그래서 일까. 마지막 장면, 아들을 안고 득의만만하게 왕비자리에 오른 희빈의 창백한 얼굴은 악마의 기운이 넘친다.

스릴러이기보다 오싹오싹한 공포물이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 연출부로 능력을 인정받은 김미정 감독의 데뷔작이다.
냉정하고 독한 사람인 것 같다.

손톱밑으로 바늘을 꾸욱 눌러 넣고, 단두대의 날카로운 칼날과 두팔이 댕강 잘라지는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치를 떠는 고통이 객석에도 파고든다.

청소년 관람불가.

/hyun@fnnews.com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