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뮤지컬. 잘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수많은 뮤지컬들에서 변형된 이야기 구조나 기본 뼈대의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이민 사회 젊은이들의 갈등을 그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적 변용이요, 배꼽 잡게 만드는 코미디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는 ‘말광량이 길들이기’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비록 디즈니 특유의 권선징악으로 포장되긴 했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아간 삼촌에게 복수하는 ‘라이언 킹’의 스토리 라인은 ‘햄릿’의 진화된 구조에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좀 더 원작에 충실한 버전을 원한다면, 원제목 그대로인 뮤지컬 ‘햄릿’이 있다.
‘햄릿’은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1999년 말 초연돼 600회가 넘는 공연을 기록하며 10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는 대중적 인기를 기록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국내의 스타급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특히 주인공 역의 김수용은 과거의 어떤 무대보다 뛰어난 연기와 노래를 선보이며 전율이 느껴질 만큼 강렬하고 격정적인 햄릿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뮤지컬 ‘햄릿’의 한국 공연이 흥미로운 것은 역시 무게감 있는 원작을 뮤지컬이라는 형식과 틀을 통해 충실히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특히 가슴 시리도록 비장한 스토리를 무대에 재연하면서도 뮤지컬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턴테이블 무대의 결투 장면, 벼랑 끝에서 펼쳐지는 오필리어의 최후, 거울 속 분신들을 통한 거투르트 왕비의 내면의 갈등 장면 등 볼거리도 풍부하지만, “사는 게 연극 같다”는 햄릿의 노랫말은 눈물이 날 만큼 선명하고 강렬하다. 정극에서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인물간의 관계가 뮤지컬에서는 서정적인 리듬과 멜로디를 통해 보다 친숙해진 감성적 진화를 거치며 결국 캐릭터들의 갈등을 한층 쉽게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효과를 잉태해낸다. 대중적인 문화산업으로서의 뮤지컬의 장점과 예술작품의 진정성의 교묘한 교차점을 찾아낸 것 같다. 모쪼록 객석의 관객들도 옛 작품이 아닌 여전히 빛을 발하는 현대적 가치를 지닌 ‘고전의 환생’으로서 이 뮤지컬의 재미를 만끽하고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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