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나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 농가생활에 식량사정이 나쁜 때를 이르는 말이다.
최근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실감이 나지 않지만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례행사처럼 찾아들던 농촌의 빈곤상을 빗댄 표현이다. 이렇게 한 끼 먹기가 어려웠던 시절 주린 배를 채워 주던 작물 중의 하나가 감자다.
감자는 쌀, 밀, 옥수수와 함께 전 세계 4대 주식 작물 중 하나다.
■쉽지 않은 인공씨감자 생산
우리나라에선 해마다 약 2만5000ha에서 감자가 재배된다. 감자는 다른 주식 작물과 달리 종자번식이 아닌 영양번식을 한다. 영양번식이란 씨앗이나 포자를 이용하지 않고 잎, 줄기, 뿌리와 같은 영양기관을 이용해서 번식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반씨감자의 불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자연 상태에서 감자를 감염시켜 생산량 감소를 초래하는 수십 종의 바이러스는 치명적이다. 대부분의 바이러스가 진딧물을 매개로 감염되는 만큼 씨감자 재배농민들은 진딧물 예방을 위해 주기적으로 농약을 살포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깨끗하고 순도 높은 씨감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재배 농민들의 큰 바람이다.
바이러스 문제뿐 아니라 일반씨감자는 쪼개 심어야 하는 불편은 물론 생산에서 파종까지 6∼8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또 수분이 많고 무거워 운송도 어렵고 물류비 역시 많이 든다. 저장 역시 쉽지 않다.
■인공씨감자의 탄생
각종 바이러스로부터 씨감자를 보호하는 획기적인 성과가 인공씨감자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정혁 박사팀의 연구 결과로 개발된 인공씨감자는 무균상태하에서 조직배양기술을 통해 만들어진다. 조직배양기술이란 식물의 세포나 조직을 무균상태의 인공배양액을 사용해 배양·증식시키는 기술이다.
인공씨감자 생산과정은 크게 2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서는 인공적으로 봄, 여름과 같은 환경을 조성해 충분한 양의 잎과 줄기를 확보한다. 이 단계에서는 배양액의 비율에 있어 탄수화물에 비해 질소질과 칼리질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배양 온도도 25도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또 낮의 길이도 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게 해주어야 한다.
1단계가 마무리되면 ‘결실의 계절’인 가을과 같은 조건을 만들어 비로소 인공씨감자를 생산하게 된다. 1단계와는 달리 배양액의 구성요소 중에서 탄수화물의 농도를 높이고 배양실 온도도 20도 전후로 낮춰야 한다. 낮의 길이 역시 10시간 이내로 대폭 줄인다. 완성된 인공씨감자는 일정 기간 휴면상태에 들어가고 파종시기에 맞춰 싹을 내고 파종에 들어간다.
인공씨감자는 질병이 없는 우량 종자인데다 기존 씨감자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기가 작다. 약 0.5∼1㎝, 무게는 약 0.5g 정도며 한번만 증식해도 400g 정도의 감자를 서너 개씩 만들어 낸다. 이론적으로는 1ha 에서 약 25t 정도의 감자가 생산되는 셈이다.
인공씨감자 대량생산기술은 다른 여러 가지 작물의 우량종자 생산에도 응용될 수 있다. 마늘과 백합, 마 종자 등이 대표적인 응용예다. 모두 감자와 같은 영양번식을 하는 작물로 대부분 바이러스 질병이 문제가 되어 왔다.
자연히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은 우량종자를 대량 생산해 공급하게 되면 획기적인 생산성 증대를 가져올 전망이다. 식량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빈국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 김호연기자
■사진설명=콩알만한 크기의 인공씨감자와 토양에서 자란 일반씨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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