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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아트 톡톡톡] ‘사진같은 그림’ 극사실화 보고 또보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0.22 11:22

수정 2014.11.04 21:22

지난해부터 억억하며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게 만든 미술시장의 일등공신은 극사실화 작품이다.

‘사진같은 그림’으로 대중들을 쑤욱 끌여들였다. 보기가 쉽고 ‘손맛’이 뛰어나 중산층들의 지갑을 열게 한 미술시장 효자작품이다. 기술과 노동력이 빛나는 작품은 감동과 대박을 터트렸다.

밀도높은 사실묘사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붓질로 ‘스타 작가’들이 탄생했다.

이정웅 박성민 도성욱 윤병락 변웅필등 뜨거운 미술시장에서 날개돋힌 듯 작품이 팔렸다.

이들 작품의 ‘참맛’은 작가의 순수한 노동력이 돋보이는 손맛에 있다. 붓질한 흔적도 보이지 않아 관람객들의 눈을 혼란케 하는 이들 작품을 두고 미술에세이스트 정민영씨는 ‘영혼의 지문같은 손맛’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극사실화가 인기몰이를 하자 미술시장에는 이른바 잘팔리는 극사실화작품이 쏟아졌다. 그런데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사진같은 그림’이 미술시장의 도마에 올랐다. 극사실화 그림이지만 밑그림이 사진(프린트)인 ‘전사기법 작품’때문이다.

전사기법은 ‘디지털사진을 컴퓨터 작업을 통해 원하는 크기로 캔버스 천에 프린트한 다음 그 이미지를 따라 채색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집약적인 수작업과 전사기법 작품을 구별해야 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적인 그림에 반해 작품을 구입한 컬렉터들이 “전사냐, 아니냐”를 문의하는 일이 늘었다는 강남 P화랑은 모작가의 작품은 ‘전사 작품’이라고 밝히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사작품과 극사실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다양한 표현형식이 존중되는 현대미술에서 전사기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는 한국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섭소장은 “다만 순수한 작가적 노동력을 아끼지 않은 경우와 손쉽게 기계적인 기술에 의존한 것은 구분되어야 하고, 이를 처음부터 일반 소비자에게 밝히는 것이 최소한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사기법을 활용할 경우 실제 제작시간은 30∼40% 이상 단축할 수 있다는 매력때문에 일부 젊은작가들까지 쉽게 유혹되고 있지만 이는 반쪽그림이자 성형미인”이라며 “최근엔 마티에르의 질감표현까지 가능한 인쇄술이 발달해 작품을 구분하기 힘들다. 작품을 감상할 때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를 운영하는 김영석대표는 “전사기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사기법은 스케치를 하는 다양한 기법중 하나로 데생이 생략된 것이다. 다만 기술력은 작가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며 작가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 있는 작품성이 전제됐을 때 설득력 있다”고 강조했다. 작품성만 있다면 프린트다, 아니다를 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노화랑 노승진대표는 “전사작품은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태가 나빠진다든지 복원할 때 프린트가 드러나는 문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부분 컬렉터들은 전사기법에 대해 시선이 곱지않다. 인사동에서 만난 컬렉터 K씨는 “극사실화인줄 알고 샀는데 전사라면 그것은 컬렉터를 우롱하는 사기행위”라면서 “아무리 잘 그린 전사작품이라 하더라도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이 돈’이 된 시대다. 쉽고 빠른 방법으로 '돈 맛’의 달콤한 유혹에 빠진 작가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미술시장이 뜨거워질수록 미술애호가들은 냉정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관객의 눈이 너무 날카로워졌다. 독창적인 작품 세계없이 흉내내기에 급급하다면 곧바로 외면 당한다.
” 화랑 대표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hyun@fnnews.com박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