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 장률 감독의 신작 ‘경계’는 고통스러운 영화다. 롱테이크(길게찍기)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느린 화면과 끝없이 펼쳐지는 몽골의 초원 풍경이 익숙해지기까지는 6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123분이다).
지난 2월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됐던 이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세상에는 국가와 국가간의 경계인 국경 뿐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존재하는 무언의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경계는 공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심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언어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경계들을 허무러뜨릴 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은 통하게 되고 ‘희망’이라는 것도 거기서 싹튼다고 감독은 말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 이야기를 위해 장률 감독은 탈북 여인과 그의 아들, 그리고 몽골 남자를 등장시킨다. 영화 속 이야기는 단순하다 못해 단조롭다. 희망을 찾아 북을 탈출한 모자가 잠시 몽골의 초원에 머물다 떠나는 과정이 이야기의 전부다. 극도로 제한된 대사는 몽골어와 한국어(북한 사투리)로 서로 통하지 않고 겉돈다. 또 몽골의 끝없는 사막과 초원, 메마른 하늘과 구름 등이 만들어내는 낯선 풍경과 미장센도 감독의 사색을 보강하는 데 한몫한다.
탈북 모자 최순희와 창호는 장 감독의 전작인 ‘망종’의 조선족 모자의 이름과 같다. 중국에서 김치를 팔면서 살아가는 조선족 모자의 절망적인 삶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려 했던 ‘망종’의 세계관이 ‘경계’로 확대·심화된 것이다.
탈북 모자의 어설프고 균일하지 않은 북한 사투리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한 관객에게는 옥에티다.
시종일관 창백한 표정과 무뚝뚝한 어투로 무겁기만 한 삶의 무게를 지탱해내는 탈북 여인 최순희 역은 김기덕 감독의 ‘섬’과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 등에 출연했던 서정이 맡았다. 또 가족을 모두 떠나보내고 묵묵히 땅을 지키는 유목민 남자 항가이 역은 몽골의 국민배우 바트 을지가 맡았다. 11월8일 개봉.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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