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많이 사랑해주신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빠 사자 무파사는 애써 씩씩한 체 했다. 프라이랜드를 쩌렁쩌렁 울렸던 목소리도 가늘게 떨렸다. 수십마리의 동물들과 관객들은 서로를 한참이나 마주봤다. 이별을 앞둔 가슴 찡한 교감이었다.
일본 극단 시키(四季)의 뮤지컬 ‘라이온킹’이 지난달 28일 개막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날 시키는 ‘라이온 킹’의 손익 계산서를 공개했다. 총 제작비에 약 177억원을 썼고 흥행수입은 약 140억7000만원, 무려 36억원이나 적자를 냈다.
제작자 입장에선 장사 잘 못한 거다. 좀더 오랫동안 공연해도 본전은 챙길텐데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을게다. 그럼에도 ‘라이온 킹’은 우리에게 참 중요한 선물을 줬다.
“엄마 이거 돈 진짜 많이 들었을 것 같아.”
지난 5월 ‘라이온 킹’을 보러갔을 때 옆자리 사내아이가 내뱉은 말이다. 깜짝 놀랐다.
예닐곱살짜리 아이의 말이지만 흘려들을 게 아니다. 그건 ‘어린이라고 얕보지 말라’는 경고다. 비싸고 좋은 건 애들도 알아본다는 얘기다. 아동극이라면 조잡한 분장과 싸구려 마스크를 먼저 찾는 우리네 관행을 꼬집는 말이기도 했다.
어른의 눈으로 봐도 ‘라이온 킹’은 비쌀 만한 공연이다. 티켓 값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사람이야 많지만 극장을 나서는 사람 중에 ‘돈 아깝다’며 얼굴 붉히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분장부터 의상,거대한 무대 장치까지 어느 한군데도 소홀한 구석이 없다. 그러니 본 사람마다 ‘볼 만하다’고 말하는거다.
한번은 추억의 만화 ‘달려라 하니’가 뮤지컬로 공연된다는 소식을 듣고 갔다. 달리기가 주요 소재인 만큼 역동적인 분위기를 어떻게 살릴지 무척 궁금했다. 하이라이트인 육상 경기 장면이 시작되자 무대엔 커다란 사선 모양의 조명이 들어왔다. 주인공들은 슬로우 모션으로 달리기 장면을 표현했고 군중들의 함성은 ‘와! 와!’라는 자막으로 대체됐다. 자연히 긴장감이 떨어졌고 객석에선 킥킥대는 웃음이 나왔다.
연출자는 원래 거대한 스탠드를 세워 웅장함을 살리고 싶어했지만 제작비가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이 연출자는 “아동극이나 어른용 뮤지컬이나 돈 드는 건 비슷한데도 ‘아동극에 뭘 그렇게 돈을 쓰느냐’는 목소리가 커서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인기 만화 주인공이 무기를 휘둘러대는 것 외엔 볼만한 아동극이 없는게 우리 현실이다. 우리 어린이들이 ‘라이온 킹’ 수준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건 축복이라고 본다. 수십억원의 손해도 일본 극단이 지고 가는게 아닌가. 이래 저래 ‘라이온 킹’이 고마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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