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중견 기업 디자인팀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디자인 전문회사를 설립한 김 모씨는 눈물을 머금고 회사 문을 닫기로 결심했다. 일감이 줄어든 탓도 있었지만 신진 디자이너들이 대기업 위주로 몰려 적합한 인재를 뽑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구 지역에서 디자인 회사를 하는 황모씨도 직원 두 명이 대기업 디자인실로 훌쩍 이직하는 바람에 회사를 운영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사업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중소 규모의 디자인 전문회사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문을 닫는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중소 디자인 전문회사가 줄어들면서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 디자인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일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1430곳이었던 디자인전문회사 수는 지난달 말 1000여개로 급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2년간 디자인전문회사는 매년 250∼350곳이 새로 개업하면서 급격한 증가세를 보여왔지만 올 들어 400여곳 가까운 회사가 한꺼번에 문을 닫은 것이다.
이같이 폐업하는 디자인 전문회사가 늘고 있는 이유는 최근 대기업, 중견기업들이 ‘디자인 경영’을 강화하는 추세에 따라 자체 디자인 부서를 운영하면서 디자인 전문회사의 일감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 디자인전문회사 관계자들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디자인 관련 부서를 강화하면서 디자인 전문회사의 일거리가 줄어드는 문제에다 인력보강 차원에서 대기업으로 스카웃도 늘고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 디자인전문회사 사장은 “일감이 없거나 직원이 모자라 놀고 있는 디자인 전문회사가 주위에만 1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자체 디자인경영을 강화한 게 오히려 창의적인 디자인전문회사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삼성, LG, 현대차 같은 대기업 외에 중견기업까지 디자인 경영에 뛰어들면서 디자인 업계는 전반적으로 인하우스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전문회사에 의존하기 보다 작게라도 디자인 부서를 만들어 자체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업들의 자체 디자인 강화가 늘어나고 디자인전문회사가 줄어들면서 디자인 졸업생들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전국 2,4년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은 매년 3만8000명씩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 수는 졸업 후 취업을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유학을 떠나거나 전공과 상관 없는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홍익대 미대 A 교수는 “대학, 전문대를 포함해 디자인 관련 학과가 터무니 없이 많은 마당에 디자인 전문회사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 취업난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면서 “공공 디자인 등 기업 이외 분야의 디자인을 활발하게 만들어 디자이너 수요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yangjae@fnnews.com 양재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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