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 수상 배우 김도현

박하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1.08 11:21

수정 2014.11.04 20:09



짧아서 잘 묶이지도 않는 머리카락을 상투처럼 질끈 동여맸다. 거뭇한 턱수염은 강한 인상을 주려고 일부러 깎지 않았단다. 빈티지 풍의 점퍼와 청바지가 퍽 잘 어울리는 배우 김도현의 첫인상은 강하고도 소탈했다.

다만 퉁퉁 부은 얼굴이 문제였다. 지난 밤 동료배우 박건형의 생일 파티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탓이다. ‘붓기가 빠진 뒤에 촬영하자’고 하자 ‘그냥 생긴대로 가자’며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댄다.


그는 그만큼 솔직하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느낀대로 표현한다. 그 당당함에 ‘이 남자에겐 뭔가 대단한게 있나’ 싶다. 멋내지 않아도 멋있는 B형 남자. 그게 바로 김도현이다.

■데뷔 후 세번째 작품에 신인상 거머쥐다

그는 얼마전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 신인상을 탔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단역으로 데뷔해 ‘천사의 발톱’ ‘싱글즈’ 단 세 작품만에 이룬 쾌거다. 시상식을 앞둔 모든 배우들이 그렇듯 그 역시 상 욕심을 내지 않았을까.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까요? 전 사실 첫 작품 ‘천사의 발톱’으로 신인상을 받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참 야무지죠?”

당시 ‘천사의 발톱’은 제1회 더뮤지컬 어워드에서 창작 초연으로는 드물게 8개 부문 중 6개 부문을 휩쓸었다. 김도현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 일두와 이두, 1인 2역을 맡아 열연했다. 더블 캐스팅 된 탤런트 유준상에게 관객들의 관심이 쏠릴 동안에도 그는 제 역할을 무리없이 해냈다.

“전 진지한 악역이 좋아요. ‘천사의 발톱’은 거기에 딱 맞는 작품이었죠. 공연 내내 이 작품으로 상을 타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왠걸. 그에게 상을 안겨준 건 뮤지컬 ‘싱글즈’다. 무능력하다고 여자 친구에게 채인 남자 ‘정준’은 김도현의 ‘악역’ 이미지를 산산히 부쉈다. 엉덩이 부분이 늘어난 트레이닝복과 덥수룩한 머리카락, 자기 관리라곤 할 줄 모르는 순박한 남자로 다시 태어난거다.

“우스운게 뭔지 아세요? 정준을 연기하면서 뭔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거에요. 이런 역할을 원한게 아닌데 나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마음 한구석에선 계속 정준을 거부하는데 온 몸은 정준이 돼가는 거죠.”

■“귀로 들어가서 가슴을 울리는 배우 될 것”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중 하나는 ‘한국 연극계 거물 김동훈의 아들’이다. 아들이 배우의 길을 가겠다고 하자 손찌검까지 하며 격노하셨던 아버지는 지금 고인이 되셨다. 그는 이번에 신인상을 타자마자 아버지 산소부터 찾았다.

워낙 유명했던 아버지를 뒀기에 ‘피는 못 속인다’는 평부터 ‘부친 덕에 남들보다 쉽게 관심을 끈다’는 말까지 지겹게 들었다. 이쯤되면 지레 예민하게 굴 법도 한데 그는 여유롭기만 했다.

“이번에 아버지 묘소 앞에 신인상 트로피를 고정시켜 놓고 오려고 했어요. 시멘트 한 사발 부어서 콱 박아놓는거죠. 아무도 못가져가게. 어머니가 말리셔서 그만뒀어요. 하하하.”

아버지 덕에 아주 어릴 때부터 연극판을 봐온 그에겐 배우치곤 남다른 꿈이 있다.

“딱 마흔 다섯까지 배우로 활동할거에요. 공부를 좀 해서 예술 행정가가 되는 게 궁극적인 꿈이에요. 가능성이 있는 공연들이 무대에 서려면 예술가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줘야 하거든요. 국가가 나서도록 제가 힘을 쓰고 싶어요.”

물론 그 때가 오려면 십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는 것 뿐. 그의 말대로라면 ‘귀로 들어가서 가슴을 울리는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그런 그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그는 오는 16일 엘지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뷰티플 게임’에서 또 한번의 악역을 맡아 활약한다.
‘뷰티플 게임’은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를 만든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2000년에 내놓은 최신작으로 축구가 주요 소재다.

“제가 맡은 토마스란 역할이 없으면 이 작품은 진행이 안되요. 제가 계속 주인공을 괴롭히면서 이야기가 흘러가거든요. 불의를 보면 못참는 제 성격과도 비슷하더라구요. 제 속엔 정준도 있고 토마스도 있나봐요.”

/wild@fnnews.com 박하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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