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 기류가 심상치 않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경제가 화제라면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란 말을 접하는 것이 그리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이 말과 병행되는 공통된 보디 랭귀지이다―이들은 주위를 일단 한번 둘러보고 몸과 목소리를 낮춘 다음 마치 해리포터의 등장인물들이 악의 제왕 ‘볼드모트’를 입에 담을 때 갖는 그 두려움 섞인 자세로 이 ‘대공황’이란 말을 한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사극 속에 등장하는 천기누설 장면이다. 물론 이 같은 행동에 희극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이유 있는 두려움이다.
불과 4∼5년 전 배럴당 25∼40달러에 머물렀던 원유가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해 100달러에 육박하고 국제 통화시장에서 미 달러화 가치는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물가상승폭은 가파른 등정을 계속하고 있다.
주택매매율은 올 들어 지난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올해 말까지 미국 내 200만 채가 넘는 집들이 빈 집으로 남을 예정이고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평생 갚아나가야 할 모기지의 노예로 전락할 상황이다. 2006년 말까지 집계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의한 미국인들의 채무량은 가히 천문학적이어서 공학용 계산기 없이는 원화로의 환율 전환이 불가능하다.
이 같은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는 2001년 이후 신설된 민간부문 일자리의 5분의 2에 해당하는 주택 건축 관련 업종을 위태롭게 하여 대량 실업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대재앙의 원인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컬럼비아대학의 스티글리츠 교수는 앨런 그린스펀을 선두로 한 부시 행정부의 금융정책을 들고 있다. 그 예로서 부시 행정부 초기 등장했던 전대미문의 1%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제 적용 금리 -2%로 변환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같은 기형적인 금융시장 토대 위에 ‘조삼모사’의 원칙에 입각하여 운용된 변동금리로 유인된 무자격자들에게 주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묻지마’식 대출은 수백만의 미 근로자들을 비도덕적 담합으로 상향 감정된 주택구입으로 내몰았고 이 같은 부동산 거품에 기인한 자산 효과는 미국인들의 무분별한 소비로 이어졌다. 작년 한해 지구상에서 이루어진 신용거래의 60%가 미국인들의 사인 하에 이루어졌고 이로 인한 신용카드 부채는 2007년 말 9000억불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주로 전쟁비용으로 충당되는 엄청난 채무와 연간 8000억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는 근로자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 재임기간의 미국의 부채 증가율을 70%로 보고 있다.
지난 8일 미 상하양원 합동경제위원회에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벤 버냉키 의장은 올 하반기 미국 경제는 현재보다 더 심한 성장 둔화에 직면할 것과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전망하였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체감경기 한파에 대한 일종의 공식적 확인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제반 문제점들의 혼재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는 거시적으로 건강한 회복력을 갖추고 있다고 공언했고 이는 부시 미 대통령을 선두로 한 미 정부 관료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은 정치인들의 이 같은 공언(公言)이 1929년 대공황 당시 상점과 공장들이 폐쇄되고 은행들은 줄줄이 파산하며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어 미국인의 4분의 1이 실업자 신세로 무료 급식소 앞에 줄을 서기 전까지는 ‘미국 경제 이상 무’를 외치던 그 당시 정치인들의 공언(空言)과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77년 전 대공황의 악몽이 오늘 미국에 다시 재현되고 있는가. 경제의 검은 세력 ‘볼드모트’는 부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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