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박현주기자】홍콩의 밤은 역시 화려했다. 바다위에 지어진 홍콩 컨벤션센터는 지난 25일 환한 대낮처럼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날 하루 그곳에서 약 1000억원대의 돈이 출렁였다. 세계적인 미술품경매사 홍콩 크리스티 경매 때문이다. 하루 낙찰액 1000억원. 서울옥션 1년치 낙찰 규모다.
20세기 중국미술과 아시아 컨템포러리 경매가 펼쳐진 경매장은 오전 10시부터 발디딜 틈없이 북적였다. 1000여명 이상의 컬렉터와 화상으로 넘쳐났다. 낙찰가를 두드리는 망치소리와 스페셜리스트의 대포를 쏘듯 터지는 빠른 목소리는 새벽 1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억단위 숫자가 몇초 단위로 바뀌는 전광판엔 눈이 말똥말똥한 컬렉터들이 진을 쳤다.
이날 경매는 중국미술 최고가 기록이 세워졌다. 홍콩크리스티 경매 사상 6600만홍콩달러(한화 78억원)라는 낙찰액 최고가가 터졌다. 중국작가 차이궈창(50)의 아펙프로젝 14점의 드로잉이었다.
이 기록은 홍콩크리스티의 강력한 라이벌인 소더비 경매의 중국미술 최고가를 깨는 진기록이기도 했다. 지난달 런던 소더비경매에서 팔린 중국 위에민준의 유화 ‘처형’이 한화 약 55억원에 낙찰됐었다. 또 중국원로 작가 자오우키의 유화 한점이 2600만 홍콩달러(한화 35억원)에 팔려 작가의 경매 최고가도 경신했다.
한국미술품은 홍경택(7억7000만원)이 세운 최고가를 갈아치우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선전했다. 낙찰총액이 4168만7750홍콩달러(한화 약 50억원)에 달했다. 지난 5월경매보다 1.7배나 늘어난 액수로 사상 최고 낙찰기록이다.
이날 홍콩크리스티 아시아 컨템포러리 경매 낙찰규모는 4억6718만홍콩달러(한화 약 570억원). 지난해 열린 5월 경매(한화 약 104억원)보다 5배이상 폭발적인 성장세다.
아시아미술품을 자극하며 집어 삼키고 있는 홍콩크리스티 경매장을 들여다봤다.
■아시아 컨템포러리 경매 한중일 경쟁 후끈
4400만원, 6582만원, 7180만원, 1억3100만원, 1억5000만원, 2억1543만원, 3억1000만원, 3억5900만원, 4억3000만원, 4억6000만원, 4억9000만원. 탕탕탕∼. 김동유의 마릴린 먼로. 추정가보다 13배가 넘는 금액에 낙찰됐다. 박수가 터졌다.
지난 25일 오후 7시. 한국인들이 빠른 몸짓으로 경매 전광판앞에 몰려 들었다. 강형구의 '푸른색의 고흐'가 추정가 9배를 웃돌며 5억까지 치솟으면서 시작된 한국작품 경매는 김동유, 김창열, 오치균,백남준까지 5억이상 고가행진이 이어졌다.
두 점이 출품된 오치균작품 역시 1억, 5억대가 넘는 낙찰액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작품값이 끝없이 올라 거품이냐, 아니냐의 논란에 서 있던 그의 작품은 5억원대를 넘어서면서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밤 10시가 넘어서는 시간, 아직도 한국의 젊은작가들의 작품 수십점이 남아 있는 상황. 이환권의 '뚱뚱한 소년'이 1억대를 돌파하고 첫 출전한 임태규가 추정가를 웃도는 3000만원대에 낙찰됐다.
한국작가들의 선전속에 일본작품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서른한 살에 요절한 Tetsuya Ishida의 작품 등이 추정가의 8∼10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되면서 일본작품에 시선이 집중되기도 했다.
경매는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고가의 작품이 일찍 팔려나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컬렉터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한국작품은 지난 5월 홍경택의 '연필'이 7억7000만원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대부분 추정가의 4∼8배에 팔렸다. 반면 처음 소개된 오순환의 작품은 2점이 유찰됐다.
중국의 강한 얼굴그림과 일본의 엽기적인 그림, 한국의 극사실의 예쁜그림속에 오씨의 편안한 작품은 밋밋하다는 평이 많았다. 또 작가가 알려져 있지 않은 탓이었다는 말도 쏟아졌다. 소속작품이 유찰되지 않게 화랑에서 '받힌다'는 소문은 소문이 아닌 듯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낙찰유무는 결국 소속화랑과 출품자의 마케팅 합작의 결과로 보였다.
홍콩크리스티 한국사무소 배혜경소장은 "이번에 첫 출품한 강형구의 작품은 외국컬렉터들이 작품을 가지기 위해 계속 비등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또 김동유 최소영 등은 이제 국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되어 경쟁이 치열했다"면서 "잘알려지지 않은 작가들도 추정가보다 높게 낙찰돼 한국작가들의 해외진출이 탄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경매는 중국미술 강세와 한국미술 상승세속에 일본작품의 약진이 돋보였다. 일본사상 최고 작품수(72점)가 출품된 일본작품은 모두 팔려나갔다.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됐다.
한편, 경매장에는 한국컬렉터들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배소장은 "지난해까지만해도 한국작품을 사러오지 않았는데 구할 수 없는 작품을 이곳까지 사러오는 컬렉터들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매장에서 만난 50대컬렉터는 지난 5월부터 미술품을 수집, 70억원을 쏟아부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경매에서 중국그림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경매에 참관한 서울옥션관계자는 “아시아미술을 점령하고 있는 홍콩크리스티의 저력을 확인했다”면서 “국내컬렉터들이 이곳까지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오는 해외미술품경매 활성화는 국내 옥션사의 위기이자 기회”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옥션은 내년 메이저경매 프리뷰는 홍콩에서 개최하는 방침을 세우고 장소를 물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매 참여는 어떻게 하나
크리스티 홍콩 경매는 일년에 두 차례(5월, 11월) 열린다. 경매에 참여하려면 직접 경매장에서 번호판 참여, 서면입찰, 전화입찰 방법이 있다. 지난 5월부터는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비딩(On-line bidding)을 시작, 온라인경매로도 참가할 수 있다.
경매가는 한번 경매인이 낙찰을 선언하는 순간 전세계적으로 공식화되어 기록된다. 경매 중에 낙찰받은 작품은 수수료가 포함된 가격으로 작품을 사게 된다. 이 수수료는 낙찰가(Hammer price)가 2만달러(USD)까지는 25%, 2만달러 이상∼500만달러 이하는 20%, 500만달러 이상은 12%가 부과된다. 낙찰작품은 경매 후 지불이 끝나는 대로 경매장에서 직접 가져갈 수 있고 전 세계 어디로든 배송이 가능하다.
현재 크리스티는 전 세계 39개국에서 15개의 경매장과 85개의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크리스티 한국사무소는 “각 분야 별 크리스티 전문가들과 연계, 의뢰인들의 소장품들을 무료로 감정해서 경매에 출품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