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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의 팬텀오브더뮤지컬]아름다운 뷰티풀 게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7.11.29 20:40

수정 2014.11.04 16:10

부럽다. 관객을 빨아들이는 저 힘의 원천은 뭘까. 얼마전 체코 원산의 ‘햄릿’ 공연을 보고 느꼈던 부러움이 ‘뷰티풀 게임’에서 다시 살아났다. 뮤지컬 팬들이 앤드류 로이드 웨버에 열광하는 이유를 재차 확인할 수 있다.

발상부터 파격적이다. 좁아터진 무대에서 축구 시합을 보여주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를 록스타로 바꾼 웨버의 상상력은 끝이 없는 듯하다.

양팀 14명의 선수들은 슛도 하고 드리블도 하고 헤딩도 하고 프리킥도 찬다(팀당 선수를 7명으로 줄였음을 이해하자). 이들이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슬로모션으로 펼치는 ‘축구 발레’는 말그대로 아름다운 게임이다.

박진감 넘치는 군무는 주인공 존(박건형)이 감옥에 갇혔을 때 절정에 이른다. 3층짜리 어두컴컴한 감방엔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잡힌 아이랜드공화군(IRA·Irish Republican Army) 투사 15명이 갇혀 있다. 이들이 역동적인 동작을 일사불란하게 펼칠 때 간헐적으로 터지는 붉은 조명은 마치 타오르는 지옥불을 연상시킨다.

춤만 보면 ‘뷰티풀 게임’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닮은 꼴이다. 두 작품 모두 세미 댄스 뮤지컬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춤판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조명은 자극적이다. 객석으로 거침없이 빛을 쏟아낸다.축구장 전광판이 정면으로 비출 땐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다. IRA 테러리스트들을 쫓는 영국 경찰의 총구에서도 빛이 쏟아진다. 무대 전환은 정말 빠르다. 뚝딱 하는 동안 축구 골대가 불쑥 솟아오르고 철창 감옥이 등장하고 교회가 세워진다. 세팅이 씨줄·낱줄처럼 착착 얽혀서 돌아가는 모습이 자못 흥미롭다.

상대적으로 노래는 좀 떨어지는 편이다. 합창은 우렁차고 좋았지만 혼자 부를 땐 배역에 따라 좀 듣기 거북한 대목도 있다. 춤꾼들을 우선 뽑느라 노래 실력을 소홀히 한 탓일까.

‘뷰티풀…’의 참된 저력은 스토리에 있다. 축구 황제 펠레가 지은 ‘마이 라이프 & 뷰티풀 게임(My Life and Beautiful Game)’이라는 책에서 제목을 따왔다고는 하지만 축구는 소재일 뿐이다. 그보다 웨버는 영국과 북아일랜드 간의 폭력, 나아가 편가르기를 조장하는 인간의 생존 방식을 고발한다.

1970년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사는 존은 축구 밖에 모르는 순진한 청년이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진출이 그의 꿈이다. 그러나 팀 동료 토마스(김도현)는 다르다. 영국에 대한 그의 적개심은 같은 팀의 동료이지만 영국인인 프랭크(김동호)와 잦은 충돌을 빚는다.

존과 메리(난아)의 신혼 첫날 밤, IRA 투사로 변신한 토마스의 전화가 이들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는다. 존은 차를 빌려달라는 옛 친구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다. 얼마 뒤 존이 프리미어 리그 입단 테스트를 받는 날, 영국 경찰이 존을 테러리스트로 체포한다. 존은 결국 감옥에서 7년을 썩는다.

한편 토마스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테러리스트가 된다. 조국을 위한다는 핑계로 사업을 하는 친구의 발에도 총질을 서슴지 않는다.

출옥 후 만난 두 사람. 존이 토마스에게 “왜 나를 밀고했느냐”고 묻는다. 그랬다. 존을 경찰에 밀고한 사람은 바로 토마스였다. “축구밖에 모르는 너보다 투사인 내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토마스는 대꾸한다. 분노에 차 그에게 총을 겨누는 존. 그러나 결국 쏘지 못하고 총구를 떨어뜨린다. 그런 존에게 “축구나 다시 시작해보라”는 토마스의 비아냥이 돌아온다. 토마스가 골목으로 사라지는 순간 땅, 총성이 울린다. 이어 존의 가슴에도 총알이 빗발치듯 퍼붓는다.

누가 존을 죽였는가. 영국인가 IRA인가. ‘뷰티풀…’은 영국의 국가 폭력과 그에 맞서는 IRA의 또 다른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폭력 사이에 평화가 설 자리는 없다. 영국 출신 프랭크는 아일랜드 출신 여자친구 크리스틴(김소향)과 함께 미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다.

더 깊숙히 들어가면 ‘뷰티풀…’은 편가르기에 집착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린다. 프랭크와 크리스틴은 “조상들의 분란을 우리가 물려받을 필요가 있는가”라고 항변하지만 현실은 이들에게 어느 한쪽에 설 것을 끊임없이 강요한다. 9·11 테러 뒤 부시 대통령은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편가르기의 어리석음은 현재진행형이다.

IRA를 잘 모르면 내용 파악에 다소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처절한 투쟁을 다룬 괜찮은 영화가 두 편 있다.
200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감독 켄 로치) 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감독 짐 쉐리단·1993년)를 추천한다.

‘뷰티풀…’은 2000년 런던 초연 이래 7년 만에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 중이다.
3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돌아온 박건형을 비롯해 주인공 전원이 더블 캐스팅 없이 공연에 올인한 모습도 보기 좋다.

/paulpaoro@naver.com

◇언제:2007년 11월 28일(수) 오후 8시

◇어디: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